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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인문학 (Humanities)/11. 에세이 (Essay)

[에세이] 철학적 관점에서 '은퇴'란 무엇일까??

by hlee100 2023.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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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관점에서 '은퇴'란 무엇일까??

사람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이 선결되는 자본주의 시대이다. 그러하다보니 이 지구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예외없이 피할 수 없는 명제가 내가 굶지 않고 불우한 환경에서 보내지 않을 수 있는 '돈'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명제의 연장선상에서 우리의 모든 바램은 '은퇴'를 피할 수가 없다. '은퇴'란 일을 하지 않고도 죽을 때까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자만이 갖는 보상인 셈이다. 그러하니 성공적인 '은퇴'는 인생의 목표가 되기도 하며, 은연 중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목표라는 의미와 함께, 50~70대에 성취할 수 있다는 장기적인 프로젝트의 의미 역시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쉽지 않은 목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과연 '은퇴'란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더 근원적인 물음이 필요한 것 같다. 과연 '돈'은 무엇인가?

 

왜 '돈'이 필요할까? 없으면 어떻게 될까? 등 이 질문들을 파고들어가다보면, 결국 처음에는 내 생존과 직결된다. '돈'이 없으면 먹을 수 없고 결국 비참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죽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려움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 '돈'을 벌려는 명분이 생존의 두려움이기 때문에, 딱 생존할 수 있을 만큼만 돈이 온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서는 '돈'만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돈'만이 목적이 되어버린다는 것인, '돈'도 역시 중요해가 아니다. '돈'만의 나의 결정의 잣대가 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사람 관계까지 끊어가면서 '돈'을 추구할 때, 이 사람은 '관계'보다 '돈'이 최고 우선순위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마인드가 여기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 먹고 살 정도만의 '돈'이 들어오지 그 이상의 큰 부자가 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만약 된다고 해도, 시간이 흘러 그 '돈'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다.

 

마인드라는 단어 자체가 사실 추상적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떤 계기로 나의 오래된 군것질하는 습관을 하나 바꿔야지 결심하고, 바꿔내는 것도 마인드가 전보다는 더 커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이 어떤 습관을 가졌냐가 결국 이 사람이 어떤 마인드를 가졌느냐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돈'을 벌면 그 이후에, 더 큰 뜻을 품겠다는 생각 역시, 생존의 두려움 안에 속하니, 이 굴레를 끊어낼 수 없다. 이 흐름을 보면, 지금은 풍족하지 않아도 내 마인드를 넓히고 더 크게 가질 때, 그리고 생각과 정리만이 아니라 이런 결정들을 실제 삶에서 할 때, 한 차원 높은 '큰 돈'이 들어오지 않을까?

 

철학적 관점에서 '은퇴'란 무엇일까??

 

내셔널지오그래픽 조사에 따르면 인간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하루 동안 의사 결정을 하는 횟수는 150회라고 한다. 어떤 옷을 입을지, 점심으로 어떤 음식을 먹을지 정하는 것부터 자산 투자, 업무에 관련된 사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중대한 결정 역시 포함된다. 1달이면 4500회이고, 1년이면 54000회이다. 이런 모든 사소한 것의 결정 기준이 무엇인가?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인드이고, 그 마인드가 그 사람의 '돈'의 그릇이 아닐까?

 

'돈'을 쫓는 사람에게 '큰 돈'이 가지 않는 대신, 큰 마인드를 가진 사람에게 '큰 돈'이 간다면, 역설적이게도 '큰 돈'을 가지려면 '돈'을 쫓아서는 안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어떤 것이 내 인생의 최고 우선순위인가? 큰 마인드를 품고 그렇게 살아내면 '돈'은 따라온다. 품고 생각만 하는 것이 기준이 아니라, 직접 실천하고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기준이다. 하루에 150회의 기회가 있는 셈이다. 예를 들면, '돈'을 위해 친한 지인을 배신한다거나 속인다면, 이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 '관계'와 '신뢰', '성장'이 아니라, '돈'인 것이다. 즉, 돈을 쫓는 사람인 것이다. 비록 어렵지만 이런 환경에서 '돈'이 아니라 '성장'과 '신뢰', '관계'를 선택하는 그런 결정을 반복해야 한다. 내가 갖고 있는 '돈'을 쓰는 것 역시 이런 결정이다. 어디에 '돈'을 쓰는가가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즉 반대로 이야기하면 '돈'을 큰 가치와 마인드를 갖고 잘 쓸 때, 역설적이게도 '돈'이 더 벌린다는 의미이다. 내가 어떤 마인드로 살며,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돈'이 따라오게 하는 것이 '돈'을 버는 방법이다. 또 뒤짚어보면, 바른 방법으로 '돈'이 들어오는 만큼, 내가 전보다는 더 큰 마인드와 뜻을 갖고 있다는 측정치가 될 수도 있다. 이 '돈'을 내가 내 수중에 갖고 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돈'이 내 통장에 들어왔어도, 나만의 '돈'이 아니라 더 큰 뜻을 위해 잘 써야할 도구이지 않을까 싶다.

 

철학적 관점에서 '은퇴'란 무엇일까??

 

잠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자. '돈'은 수치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관계', '신뢰', '성장'은 두리뭉술하고 측정이 어렵다. 어떻게 이 부분들이 더 개선되었는지 체크할 것인가? 내가 큰 마인드를 가졌고, 큰 뜻을 품고, 직접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큰 돈'은 큰 마인드를 따라간다는 것이 만약 맞다면, 반대로 바른 '돈'으로 그 사람의 마인드를 알 수 있다. 물론 일시적인 '돈'이나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 번인지는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 '돈'은 결국 시간이 지나 다 세어나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과연 '은퇴'란 무엇일까?

은퇴는 내가 나만의 생존을 넘어서 큰 뜻을 가지고 그렇게 행동할 때, 이미 그 사람에게는 은퇴가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생존의 두려움으로 돈을 벌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상생할 수 있는 뜻을 품을 때, 이미 이 때가 은퇴가 아닐까? 여러번 말했듯이, 그 큰 뜻을 많이 생각하고 곱씹는 것이 기준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결정하고 그 결정들이 모여 내 삶 자체가 되었을 때, 큰 뜻을 품었다는 기준이 될 수 있겠다.

 

나의 하루를 돌아봐도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나는 매순간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당장 오늘 아침에는 어떤 선택을 했는가? 조심스레 까페에서 커피 한잔으로 목을 축이면서, 나의 무의식적인 말과 행동들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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