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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인문학 (Humanities)/4. 사회인문 (Social humanities)

[상상력] 신화의 새, 봉황. 고대 역사 속 봉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2.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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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 신조(神鳥)이다.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에서 나는데, 사해(四海)의 밖에서 날아올라, 곤륜산(崑崙山)을 지나서 지주(砥柱)에서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서 깃을 씻고, 저녁에는 풍혈(風穴)에서 잔다.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크게 태평해진다.

- 해동역사 제 27권 / 물산지 2

[상상력] 신화의 새 봉황이 가진 상징, 역사 속 봉황은?

봉황의 몸의 각 부분에는 다섯 가지 의미가 있는데, 가슴은 인(仁)을 날개는 의(義)를 등은 예(禮)를 머리는 덕(德)을 배는 신(信)을 나타낸다고 한다. 우주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머리는 태양을, 등은 달을, 날개는 바람을, 꼬리는 나무와 꽃을, 다리는 대지에 각기 해당한다.

 

봉(鳳)자에서 바람 (風)자가 나왔다. 본래는 /*prəm/(백스터-사가르의 재구음)으로 발음이 같았기 때문에 바람이라는 의미가 같은 문자에 덤으로 붙어 있었고, 풍은 봉의 이체자에 불과했으나 후세에 이르러 봉에서 풍이 완전히 분리되었다. 역으로 이 때문에 봉과 바람의 관계가 생겼다.

 

요순(堯舜)의 도를 상징하는 상서(祥瑞)


  봉황은 고대로부터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일컬어지며 요순시대의 태평성대(太平聖代)와 성군의 덕치를 상징해왔다. 예로부터 요순은 가장 이상적 천자상(天子像)으로 하늘을 본받은 높고 위대한 성군으로 칭송되었고, 요순시대는 참다운 도가 펼쳐져 만민이 상생하는 이상향으로 여겨졌다. 어진 성군의 덕치로 나라가 태평하면 성군이 베푼 선정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상서를 내려 그 뜻을 칭송했는데, 이때 그 징표로서 출현한 상서가 봉황이다. 이런 연고로 봉황에게 부여된 상징성 중 으뜸은 요순의 도(道)와 상서다.


  성군의 덕치로 태평성대가 실현된 지상낙원에 홀연히 나타난다는 봉황에 대한 기록은 문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국 고대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는 “단혈산(丹穴山)에 봉황이 사는데, 이 새는 길조와 인애(仁愛)의 상징이며, 사람 사는 곳에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라는 기록이 있다.03 봉황에 부여된 태평성대의 상징성은 『송하견서(送何堅序)』와 『죽서기년(竹書紀年)』에도 전해진다. 중국 당나라 때 문장가 한유(韓愈:768-824)는 『송하견서』에서 “새 중에 봉황이 있는데, 항상 도(道)가 있는 나라에 나타난다”라고 했고, 전국시대 역사서 『죽서기년』에는 봉황이 황제헌원과 요(堯)ㆍ순(舜)ㆍ주(周) 임금 때 출현하여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중국의 고(古)문헌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도 이런 봉황의 상징성을 찾을 수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따르면, 봉황은 더할 수 없는 훌륭한 정치가 일어날 때 ‘임금의 어진 정치에 하늘이 감응해서 나타난 길한 징조[서응(瑞應)]’인데, 이는 태평성대의 아름다운 일 05을 상징하며, 순(舜)임금과 문왕(文王) 같은 덕이 있어야만 봉황새가 와서 춤추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예로부터 봉황이 요순시대처럼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 나타난다는 믿음에 연유한 것이다. 조선 시대 임금이 추구해 마지않았던 것도 만백성이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며 태평성대를 누렸던 요순의 정치를 이 땅에 펼치는 것이었다. 이런 연유로 세종은 나라에 공식적인 연회가 있을 때면 왕가의 태평을 기원하기 위해 송축가(頌祝歌)를 지어 불렀는데, 그 가사를 봉황음(鳳凰吟)이라고 하였다. 봉황음은 조선 세종 때 윤회(尹淮:1380-1436)가 지은 것인데, 봉황음에는 성왕(聖王)의 덕치로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가 실현되기를 기원했던 선조들의 바람이 노랫말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상상력] 신화의 새, 봉황. 고대 역사 속 봉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봉황, 눈을 뜨다

 

박세당이 짓고, 이경은이 그림을 그린 책, <봉황, 눈을 뜨다>(재미마주, 2014)는 한민족에 얽힌 역사를 신화적 맥락에서 불러내고 있다. 신화는 역사 너머에 있다. 그림책이라는 특성을 활용하여 작가는 신화의 영역 속에서 한민족이 지향해 온 역사적 꿈을 표현한다.

 

  

[상상력] 신화의 새, 봉황. 고대 역사 속 봉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야기는 “옛날 하고도 아주 오랜 옛날”로부터 시작된다. 

 

마고 할머니가 사는 커다란 성에 착하고 맑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다.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사는 이곳에서는 ‘지유’라는 젖이 땅에서 솟아나와 배고픈 생명들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하늘의 새인 봉황이 이 마고성을 지켜주었는데, 봉황이 우는 소리는 세상의 질서를 바라잡고, 봉황의 날갯짓은 맑은 바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지켜 주었다. 이런 ‘황금시대’는 그러나 사람들이 순수함을 잃고 먹을 것을 다투면서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인간의 마음에서 자라난 욕망은 편을 갈라 싸우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을 낳는 상황을 접한 봉황이 날카로운 경고음을 터뜨렸지만, 제 욕망에 눈이 먼 사람들은 봉황이 내지르는 안타까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상상력] 신화의 새, 봉황. 고대 역사 속 봉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마고 할머니는 욕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성 밖으로 내쫓는다.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이 이내 사람들을 덮친다. 배고픈 사람들이 짐승들을 잡아먹으면서 인간과 동물의 조화는 깨져버렸고,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사람들끼리 싸우는 일 또한 그치지 않았다. 봉황은 성에서 내쫓긴 사람들을 보며 한없이 슬퍼했다. 자기가 사람들을 잘못 인도해 이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생각한 봉황은 바다에 스스로 몸을 던져 사람들이 살 만한 넓은 땅을 만들었다. 높은 산에는 나무들이 우거지고, 골짜기마다 물길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봉황이 만들어준 이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추위를 피하는 집을 짓고, 먹을거리를 수확했다. 황금시대에는 못하지만 사람들이 살 만한 세상이 다시 오는 듯했다.

 

  

[상상력] 신화의 새, 봉황. 고대 역사 속 봉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은 이 땅을 만들기 위해 희생한 봉황을 그만 잊고 말았다. 그리고는 봉황이 사라진 그 마음자리에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동물들을 새겨 넣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는 땅 모양이 토끼를 닮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토끼처럼 겁에 질려 덜덜덜 떨며 다른 사람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기 바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땅 모양에서 호랑이를 발견했다. 그들은 제 힘에 들떠 으르렁거리며 싸우기만 했다. 이 땅에서 토끼를 본 이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이 땅에서 호랑이를 본 이들은 호랑이처럼 강한 힘=권력을 지닌 사람이 되기를 열망했다. 토끼를 따르는 이들이든, 호랑이를 따르는 이들이든 봉황이 원하는 세상과는 다른 세계를 상상한 셈이다.

 

이 땅에 다시 욕망의 회오리가 불어올 즈음, 이런 모습을 보다 못한 봉황이 드디어 번쩍 눈을 떴다. 봉황이 눈을 뜨자 토끼 놀이에 빠졌거나, 호랑이 놀이에 빠졌던 사람들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토끼 놀이에 빠졌던 이들은 마음 속 두려움과 대면하는 용기를 봉황에서 찾았고, 호랑이 놀이에 빠졌던 이들은 마음속을 지배하던 욕심으로부터 벗어날 계기를 봉황에서 찾았다. 봉황이 눈을 뜨자 이 땅의 모양 또한 묘하게 바뀌었다. 한국은 봉황의 머리가 되었다. 일본과 중국은 양쪽 날개가 되었고, 몽고와 만주 벌판은 봉황의 몸통이 되었다. 원래 한 몸이었지만 여러 나라로 갈렸던 세상이 봉황이 눈을 뜨자 다시 하나로 묶인 것이다.

 

  

[상상력] 신화의 새, 봉황. 고대 역사 속 봉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은이는 <작가의 말>에서 ‘봉황 민족’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 마고 할머니(마고신화는 신라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에 나온다)가 살던 커다란 성은 봉황 민족을 이룬 사람들이 살던 곳인 셈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성에서 내쫓긴 후 봉황의 희생으로 다시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작가는 봉황 민족에 대한 평화로운 신화=기억을 불러냄으로써 지금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싸움=폭력의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봉황 민족은 원래 하나였다. 커다란 성에서 살던 조화로운 기억을 되찾으면 여러 나라로 갈려 싸우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였다는 이 얘기를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그림책에서 신화와 역사는 따로 구분되지 않는다. 신화 속에서 작가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역사의 모습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상상력] 신화의 새, 봉황. 고대 역사 속 봉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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