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나 졸리] 안젤리나 졸리 일생, 유년시절, 출연영화, 결혼, 입양 총정리
1. 안젤리나 졸리는 누구?
안젤리나 졸리는 2009년, 2011년, 2013년도에 미국 헐리우드에서 가장 인기가 높고, 출연료가 비싼 여배우로 선정될 정도로 금세기에 가장 핫하고 명성이 높은 여배우라는 평가받고 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1회, 골든글로브상 3회 수상했을 정도로 금세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톱여배우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그녀가 2001년도에 출연한 영화 ‘툼 레이더’의 대성공으로 허리우드의 최고의 여자액션배우로 큰 명성을 떨치게된답니다.
특히 안젤리나 졸리는 2000년대 이후 수많은 명작품에 출연해서 큰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우뚝 솟아오르며, 큰 명성과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데요. 또한 그녀는 세계의 오지에서 가난과 질병에 신음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 자선사업을 실천하는 자선사업가로도 유명하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보기 드믈게 인기 영화배우일 뿐만아니라, 진한 휴머니즘을 지닌 휴머니스트이자, 자선사업가입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안젤리나 졸리는 몇 년 전부터 해마다 100억원 이상의 돈을 불우한 이웃을 위한 자선금을 내놓을 정도로, 훈훈한 미담을 실천하는 미담제조기로도 유명합니다.
2. 엔젤리나 졸리 유년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미국의 유명한 배우 존 보이트이며, 그녀의 어머니 또한 허리우드의 미녀여배우 마셸린 버트런드이지요. 안젤리나 졸리는 특히 미모의 여배우출신 어머니 마셸린 버트런드의 젊었을 때의 모습을 많이 빼어닮았다는 평을 받고 있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헐리우드의 유명한 배우 존 보이트와 여배우출신 마셸린 버트런드의 둘째딸로 태어났는데요. 그런데, 안젤리나 졸리가 태어난 1년 후, 아버지와 어머니가 전격 이혼하면서, 그녀의 불행이 시작된답니다. 유명한 배우였던 아버지 존 보이트가 바람이 나서 다른 여자와 딴산림을 차리면서, 그녀는 아버지가 없는 유년시절을 보내게됩니다. 이혼한 후, 아버지가 그 어떤 경제적 지원을 전혀 하지않아서, 어머니와 그녀는 매우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게 됩니다.
결국 돈이 떨어진 어머니 마셸린 버트런드는 결혼하면서 그만둔 배우생활을 다시 하기 위해서 헐리우드를 다시 찾아갔고, 그곳에서 간신히 비중낮은 배역을 따내어 배우생활을 해나갔습니다. 그 때 안젤리나 졸리는 단역을 맡은 어머니와 함께 그녀 생애 첫번째 영화 ‘라스베가스의 도박사들’에 출연하게 됩니다. 이 영화가 안젤리나 졸리가 8살 때 처음 출연한 영화이지요.
그런데, 그녀가 첫출연한 이 영화에 그녀의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 존 보이트와 그의 연인까지 출연하게 되어, 어머니와 어린 안젤리나 졸리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게되고, 불안장애와 불면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한편 그녀의 어머니는 안젤리나 졸리의 금발의 머리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연상된다며, 그녀의 머리를 진한 갈색으로 염색해버렸답니다. 이렇게 갈색의 머리로 바뀐 안젤리나 졸리는 점점 우울하고 비뚤어진 성격으로 바뀌어같으며, 학교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한 소녀가 되어갔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학창시절 때에 두터운 입술과 안경과 교정기를 착용한 외모 때문에, 동료학생들로부터 못난이라는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왕따를 당하는 바람에, 그녀는 심한 우울증에 걸려서 한 때 자살시도까지 하게됩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그녀는 성격적으로 비뚤어지기 시작했으며, 20살 때부터 마약중독에 걸려서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된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10대 시절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자폐증상까지 보이면서, 심지어 자신에 대한 청부살인 의뢰까지 하게됩니다. 19살 때에 안젤리나 졸리는 한 살인청부업자에게 연락해서 돈을 줄테니 자신을 죽여달라고 청부를 했을 정도로 그녀의 정신은 무척 피폐해져만 갔습니다. 살인청부업자는 그녀에게 한달동안 다시 생각해보고 다시 전화하라고 역제의를 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그녀가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출연이었습니다.
3. 안젤리나 졸리의 출연영화와 결혼
안젤리나 졸리는 1991년 모델과 뮤직비디오 배우로 연예활동을 시작하였고, 그녀는 18세 때에 저예산영화 ‘사이보그2’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배우활동을 시작했으며, 1995년도엔 고등학생 해커들의 활동을 그린 스릴러영화 ‘해커즈’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서 열연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는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 조니 리 밀러와 사랑에 빠진 나머지, 21살의 나이로 그와 결혼까지 하게됩니다. 그러나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3년만에 파경을 맞게되고, 결국 두사람은 이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0년경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보다 무려 20살이나 많은 배우겸 감독 빌리 밥 손튼과 재혼을 하게됩니다. 이 두 번째 결혼에서, 안젤리나 졸리는 빌리 밥 손튼과 서로의 피가 담긴 유리병을 목에 걸고 등장하는 등 엽기적인기행을 벌여서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답니다. 또한 안젤리나 졸리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친오빠와 진한 딥키스를 하는 등 또다시 끔찍한 기행을 벌여서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게됩니다.
이렇게 안젤리나 졸리가 계속해서 기행을 벌여나가자, 그녀의 아버지 존 보이트는 공식석상에서 자신의 딸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난을 가했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비난을 접한 안젤리나 졸리는 큰 충격을 받았고, 그녀는 아버지와 의절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름 안젤리나 졸리 보이트에서 아버지의 성인 ‘보이트’를 뺀 안젤리나 졸리로 개명을 신청했고, 결국 법원으로부터 개명을 승인받아 안젤리나 졸리로 이름을 바꾸는데 성공합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자신의 이름까지 바꿀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원망감이 매우 컸습니다. 2001년도에 안젤리나 졸리는 한 영화출연을 받게되는데, 그 영화는 바로 ‘툼 레이더’로 게임을 원작으로 해서 만든 오락액션물인데, 그녀는 이 영화에 출연해 강인한 여전자 라라 크로프트역을 맡아 환상적이고 멋진 액션연기를 펼쳐보이는 등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면서, 관객들의 큰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등 흥행에 크게 성공하게 됩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이 영화의 흥행성공으로 세계적인 톱스타의 반열에 오르며, 큰 명성을 떨치게된답니다. 그런데 안젤리나 졸리는 이 영화 ‘툼 레이더’에서 그녀의 친아버지 존 보이트와 함께 출연해서 함께 연기를 펼치게되는데요. 안젤리나 졸리는 그녀가 그토록 원망했던 아버지 존 보이트를 극적으로 만나 함께 영화를 촬영하면서, 그녀는 결국 아버지와 극적인 눈물의 화해를 하게됩니다.
영화 찰영 중, 안젤리나 졸리는 아버지와 대사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친아버지에게 진실로 보고싶었다고 말하면서 아버지품에 달려들어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그녀의 아버지 존 보이트 또한 그녀를 안아주면서 ‘미안하다. 보고싶었다’는 말로 응답하면서, 두사람은 영화 찰영 중에 영화보다 더욱 끈끈한 부녀지간의 정을 나누면서 화해를 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영화 ‘툼 레이더’의 출연을 계기로 톱스타로 등극할 수 있었고, 평생동안 원망해왔던 아버지와 극적인 화해를 하는 등 두가지 커다란 수확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영화 ‘툼 레이더’가 자신의 인생을 완전 바꾸어놓았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아버지와의 화해 뿐만아니라, ‘툼 레이더’ 촬영장소인 캄보디아에서 그녀는 평생 잊지못할 큰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랍니다.
‘툼 레이더’ 촬영장소인 캄보디아에서 그녀가 목격한 것은 크메르 루즈 독재정권의 대량 학살로 인해서 백만명 이상의 주민들이 사망하였을 뿐만아니라,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는 수많은 주민들의 비참한 삶이었답니다. 포악한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인해서 수많은 주민들이 굶주림과 고통에 허덕이는 광경을 목격한 안젤리나 졸리는 그동안 그녀가 겪어왔던 고통은 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그 때부터 그녀는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구호활동에 본격적으로 매진하게 됩니다.
자신보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본 안젤리나 졸리는 방황하던 자신의 과거의 행동을 반성하였고, 그들을 돕기위해서 10억이 넘는 돈을 UN난민기구에 기부하게됩니다.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는 캄보디아에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한 아이를 자신의 자녀로 전격 입양했는데요. 그 아이가 바로 안젤리나 졸리의 양아들 매덕스입니다. 이 때 안젤리나 졸리가 입양한 양아들 매덕스는 그녀가 끔찍이 사랑하는 그녀의 첫째아들로서, 몇 년 전에 한국에 유학을 와서 연세대에 입학해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하고있는 중이랍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안젤리나 졸리의 인생은 완전 180도 뒤바뀌게됩니다. 매덕스를 입양한 안젤리나 졸리는 아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오랫동안 즐겨왔던 술과 마약, 담배를 완전히 끊는 등 그동안 자신을 파괴해왔던 잘못된 습관들을 모조리 끊어버리고, 모범적인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게됩니다. 이때를 계기로, 안젤리나 졸리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불우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에 전념하게 되었고, 2003년에는 배트남에서 팍스를, 2005년에는 에티오피아에서 자하라를 입양했으며, 또한 브래드 피드와의 세번째 결혼을 하면서 세명의 자녀들을 낳아서, 총 여섯명의 자녀들을 키우게됩니다.
아이들을 입양하고 진정한 가족을 만드는데 성공한 안젤리나 졸리!, 입양한 아이들로 인해서 안젤리나 졸리는 그녀 생애 중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에 집나간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못해서 비뚤어진 인생을 살았던 그녀가, 가난 때문에 버림받은 아이들 입양을 계기로 진정한 가족이 무엇인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조건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천사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니,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럽고, 존경스럽기 그지없습니다!
4.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의 이혼사유
그런데, 이렇게 사랑의 실천을 몸소 보여줬던 안젤리나 졸리는 남자와의 사랑에서 만큼은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과거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겪은 적이 있으며, 그리고 브래드 피트와 만나 세번째의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와의 결혼은 톱스타들의 결혼이어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세계의 많은 팬들은 두사람의 사랑이 영원히 깨지지 않기를 기대해왔는데요.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는 2004년에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면서 동거생활을 시작했고, 2014년에 정식 결혼하였는데, 영화 제작문제로 두사람간에 갈등이 시작되었고, 결국 갈등을 해소하지못한 안젤리나 졸리는 결국 2016년도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답니다. 그리고 2019년도에 법적으로 이혼이 성립되어, 두사람은 남남이 되었답니다.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가 이혼하게된 사유는 이렇습니다.
제작자이자 영화감독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제작하는 영화에 남편 브래드 피트가 프로듀서로 합류하려는 문제 때문에 두사람이 심한 갈등을 벌였다고 합니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수십년동안 70명이 넘는 여배우들을 성추행하고 성폭행을 저지른 파렴치한이랍니다. 하비 와인스타인은 얼마전에 헐리우드 여배우들이 미투활동을 통해서 그가 오랫동안 영화촬영을 하면서 수많은 여배우들을 상대로 성폭행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파렴치한 성범죄자로 낙인찍혔던 인물이지요.
그런데, 브래드 피트가 성폭력범 하비 와인스타인이 제작하는 영화에 함께 합류하려는 의도를 보이자, 안젤리나 졸리가 급구 반대하였고, 이에 브래드 피트가 자신의 합류의지를 철회하지 않자, 두 사람간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답니다. 안젤리나 졸리 또한 1998년 와인스타인이 제작한 ‘플레잉 바이 하트’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이 당시 그녀 또한 와인스타인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더더욱 브래드 피트의 와인스타인 영화제작 합류에 극렬이 반대했는데요.
결국, 두사람은 그 갈등을 전혀 해소하지 못했고, 브래드 피트의 행동에 크게 실망한 안젤리나 졸리는 법원에 이혼을 청구했답니다. 하비 와인스타인이 70여명이 넘는 여성들에게 상습적인 성폭행 및 성추행을 한 파렴치범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와 영화제작에 합류하려고 하는 브래드 피트의 처사에 실망한 것이 안젤리나 졸리의 이혼사유랍니다.
5. 평화 수호자 “파티보다 세계 평화가 우선”
졸리가 아름답다는데 이견을 달 사람을 별로 없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외모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외면을 압도한다. 졸리는 또래의 여배우들이 걷는 화려한 삶을 영위하지 않는다.
LA클럽에서 밤을 지새우고 연인과 해외 휴양지를 떠도는 것보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 오지의 아이들을 돌보고 기상이변으로 폐허가 된 곳을 찾는 일이다. 2001년 영화 ‘툼 레이더’의 해외로케지였던 캄보디아에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 졸리는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UN의 국제난민고등판문위원회의 명예대사로 활동하며 나미비아,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국가를 수차례 방문했고 필리핀, 캄보디아 등 아시아 국가에서의 봉사 활동에도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녀에게 봉사는 내면을 포장하기 위한 허울좋은 가면이 아니다.
지난해 낳은 쌍둥이의 얼굴을 공개하면서 피플지로부터 받은 400만 달러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수익의 1/3을 기부할 뿐만 아니라 일년에 두달 이상 오지에 가서 봉사활동하는데 시간을 쏟는다. 그녀의 사회활동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가치관을 바꿔놓았다. 조지 클루니, 스칼렛 요한슨, 셀마 헤이엑 등의 스타들로 할리우드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를 바라보게 됐다.
6. 6명의 아이들 “가슴으로 낳았다”
졸리와 피트에게는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 6명이나 있다. 그들에게 아이들이란 핏줄의 이상의 개념이다. 자식에 대한 그들의 가치관은 “핏줄보다 애정”이라는 생각이다. 졸리의 첫번째 아들 매덕스와의 만남은 2001년 영화 ‘툼 레이더’ 촬영에서 이뤄졌다. 촬영 중 고아원을 방문한 졸리는 활짝 웃는 매덕스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아 가족과 남편(빌리 밥 손튼)의 반대를 무릎쓰고 입양을 결정했다.
둘째 딸 자하라는 아프리카 에디오피아에서 입양했다. UN홍보대사로 에디오피아를 방문한 졸리는 영양 실조로 신음하고 있던 자하라의 눈망울을 보며 운명을 직감했다. 2006년 5월에 졸리는 피트와의 사이에서 첫딸 샤일로를 낳았다. 그러나 자신의 핏줄을 낳은 후에도 입양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지 않았다. 2007년에는 베트남 출생의 팍스 티옌을 입양했다.
2008년 쌍둥이 녹스 레온과 비비안 마셀린을 낳은 졸리와 피트는 이제 여섯 아이의 부모가 됐다. 자신의 핏줄과 입양한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있는 두 사람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샤일로보다 매덕스, 자하라, 팍스에게 더 많은 애정을 쏟는다”고 말했다.
졸리는 “그 아이들은 스타의 입양아라는 이유로 주목받는 인생을 살게끔 되있다. 또 피트와 내가 밝히지 않더라도 스스로 부모와 다른 눈 색깔과 피부색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 그 애들은 입양아가 아니라 나와 피트의 첫째, 둘째, 넷째 아이들이다”라고 말해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I. 인문학 (Humanities) > 3. 인물, 단체 연구 (Research on people, group)'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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