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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인문학 (Humanities)/3. 인물, 단체 연구 (Research on people, group)

[이재명] 사람 이재명 과거, 결혼, 정치경력 등 일생 정리

by hlee100 202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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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사람 이재명 과거, 결혼, 정치경력 등 일생 정리

 

 

1. 출생과 유년시절, 청년시절

"공장 생활 6년 동안 쇠붙이와 화공약품이 내 몸에서 이름을 얻는 동안, 나는 이름조차 없던 소년 공돌이였을 뿐이다."
자서전 '이재명의 굽은 팔' 중. 1963년 음력 10월 23일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 도촌동 지통말. 원래는 5남 4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지만 누나 둘이 요절하면서 다섯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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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친 이경희(李敬熙, 1931. 7. 9 ~ 1986. 10. 23)[4]는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 산운리 사람으로 대구 청구대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순경, 교사 등을 하다 노름에 빠졌고, 이후 탄광관리자 등을 전전하다가 안동군 예안면 산골 '지통마'에서 농사를 지었었다. 이때쯤 이재명이 태어났다. 이후 가지고 있던 조그만 땅뙈기까지 노름에 날리고 1976년 하산해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시장통에서 청소부 일을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기도 성남시로 이사를 왔고, 너무 가난해 남들 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 이재명은 성남 상대원 공단의 공장에서 소년공으로서 삶을 살았다. 그는 공장일 대신 학교를 다니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이를 막았고, 이런 아버지를 증오했고 아버지와의 갈등이 무척 심했다고 한다. 2021년 어버이날을 맞아 이재명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젊은 날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필사적으로 좌충우돌하는 날"이었다고 적었다. 또 "돌아보면 내가 극복해야 할 대상은 가난이 아니라 아버지였는지도 모른다"며 "그 강렬한 원망이 나를 단련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마음의 어둠도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가난보다 아버지를 더 증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가난 때문에 자신을 공부하지 못하게 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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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은 염산과 황동을 다루는 목걸이 공장이었고, 2번째 직장은 붕산으로 땜을 하는 공장이었는데 사장의 야반도주로 월급을 떼였다. 3번째 공장에서는 고무 조각이 손가락에 박혔는데 파편이 아직 박혀 있다고 한다. 4번째 직장 땐 날카로운 함석에 찔려 흉터가 많다. 작업반장의 구타로 인해 난청과 부분적 청각 장애도 얻었다.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가 글러브 공장에서 프레스 기에 왼쪽 손목 바깥쪽이 끼어 손목 관절이 으깨지는 골절을 입었으나 당시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해 본격적인 치료는 받지 않았다. 본인 피셜로는 어린 마음에 이런 걸로 아파하면 뭐라 할까봐 그랬다고.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고 하며 제2국민역 판정으로 병역이 면제됐다.

당시 작업반장이 고졸인 것을 알고 '나도 고졸이 되면 작업반장이 될 수 있나보다' 싶은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 락카실을 자원했는데, 락카질은 먼지 하나 없는 밀폐 구역을 만들어 작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근무시간에조차 허락없이 열리지 않는 이중문 안쪽에서 혼자 작업을 했기 때문에, 할당량을 서둘러 끝낸 뒤 숨어 몰래 책을 봤다고 한다. 벤젠과 아세톤 냄새를 너무 맡아 후각을 상실했으며 코가 비뚤어졌다고 한다. 공부를 가족들이 탐탁치 않아 했지만 어차피 제 돈으로 고학하는 거라 면전에서 막진 않았다고 한다.

우울증과 장애로 너무 힘든 나머지 17살 때 자살을 시도했다. 첫 시도 때는 연탄불이 저절로 꺼졌고, 2번째 때는 둘째 형인 이재영(李在榮, 1957. 8. 19 ~ )이 구해줬으며, 우울증에 시달리던 마지막 시도 땐 다량의 수면제를 구하러 갔다가 눈치 챈 의사가 소화제를 대신 줘 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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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어머니는 낮에는 일을 하시다 밤에는 막걸리 장사를 하셨는데 손님 중 한 명이 안주를 나눠 주더니 "귀가 참 잘 생겼네"라며 복(福)귀라고 뭘 해도 잘 될 놈이라 칭찬하였다. 때마침 중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통과하였기 때문에 그때부터 우울했던 것이 점점 상쇄되고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재명] 사람 이재명 과거, 결혼, 정치경력 등 일생 정리

 

1982년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이재명의 집안 사정으로는 대학 진학은 언감생심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이 가능했던 건 순전히 장학금과 학교에서 주는 생활비 지원 덕분이었다. 당시 공장 월급이 8만 원 정도였는데 입학금, 등록금 면제는 물론 매월 20만 원가량 용돈을 지원받는 조건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사준 제복을 입고 대학교에 갔다. 여담이지만 이재명이 입학하기 전인 70년대 중반 이미 대학교 제복은 사라진 상태였다. 가족들도 그냥 대학생은 제복을 으레 입는 줄 알았다고 한다. 본인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중고등학교를 못 다녀봐서 그런지 오히려 좋았었다고 밝혔다. 그래서 어머니가 제복을 사주실 때도 가만히 있었다고. 본인도 알고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알고도 가만 있었다는 투긴 하다. 어쨌든 입학식날 제복을 입은 사람은 자기뿐이었다고 한다.

당시 공장에서 일하던 셋째 형 이재선에게 대입 시험을 치르게 했다. 중앙대에서 매달 주는 용돈을 쪼개 주겠다고 형과 가족들을 설득했다고. 이후 이재선은 4년 등록금과 생활보조금을 받는 건국대학교로 진학해 공인회계사가 됐다.

 

 

 

 

2. 사회운동가 활동

선배들에게 사법시험에 관해 들으며 장애인이라 취업이 힘든 자신에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사법시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 때 학생운동에도 처음 관심을 가졌으며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1986년 사법시험에 붙기 직전 청소부였던 아버지 이경희가 위암으로 위독해 입원했는데, 문병을 가니 아버지가 친구들을 모아놓고 "그놈을 내가 거길 (법대를) 보냈어"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아들이 공부한다고 밀어주기는커녕 모든 가난의 원인이었던 아버지였지만, 이 마당에 구태여 뭐라 반박하기도 그래서 그저 맞다고 했다고 밝혔다.

 

 

 

 

3. 사법고시 합격

1986년 10월 23일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급히 병세가 나빠져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 귀에 합격했다고 보고를 했지만 이미 의식이 없었다고 한다. 생일에 합격 통보를 받는 겹경사였지만 기뻐할 새도 없이 며칠 후 부친상을 당했다.

1987년 사법연수원생 시절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에 감명받았다. 굳이 판검사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구나란 생각, 그리고 인권변호사로서 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군부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뜻으로 연수원생 신분에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 반대 연판장을 돌렸다고. 한 인터뷰에서는 잘릴 각오로 썼는데 잘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이후 자신은 바로 변호사가 될 것이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고, 결국 변호사 겸 성남 지역 시민운동가로 활동하게 된다. 사법시험에 붙으면 검사 판사를 누구든 먼저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의아해 하는 모친에게는 성적이 안 좋아서 변호사를 하는 것이라 둘러댔다고 한다.

실제 이재명의 연수원 성적은 판사는 지방권 임용 가능, 검사는 상위권 임용이 가능한 수준이었으나, 모두 거부했다. 당시에는 연수원 성적이 우수한 이가 판검사 임용을 거부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었기 때문에, 이재명의 연수원 성적이 낮다고 오해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나서는 26살의 젊은 나이로 경기도 이천에 노동법률상담소를 차리고 3년 동안 노동자, 농민을 위한 권익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변호사 사무소 개업 전 조영래 변호사 아래에서 망원동 수재 사건의 변호를 돕는 자원봉사를 하였다고 한다. 이후 이재명이 자신만의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려고 할 때 조영래 변호사가 이재명으로 하여금 은행에서 500만 원을 빌릴 수 있도록 보증을 서 주었다고 한다.

 

 

 

 

4. 결혼

개업 직후 현 부인인 김혜경과 결혼하였는데, 아내와의 러브 스토리가 다소 독특하다. 먼저 이재명은 '1989년 8월에 만나는 사람중 한 명과 무조건 결혼하겠다'라는 원칙을 세웠고 5명의 여자와 차례차례 소개팅을 하기로 예정되어 었었다. 현 부인인 김혜경의 순서는 3번째였는데 이재명은 김혜경을 보고 '이 사람이다'싶어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혜경과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도 나머지 두 명과의 약속을 파토낼 수는 없었던지라 4번과 5번 여자와도 소개팅을 했는데 5번 여자를 보고 '내가 왜 마음을 미리 정했을까' 내심 아쉬워했다고 한다.

 

[이재명] 사람 이재명 과거, 결혼, 정치경력 등 일생 정리


또, 아내에게 프로포즈를 할 때 내가 어려울 때의 삶의 기록을 당신에게 준다'는 의미에서 자신이 소년공 시절 썼던 일기장을 같이 주었다고 한다. 유튜브 아이콘 여담이지만 프로포즈를 한 시기가 처음 만나고 약 3일 후였기 때문에 아내의 가족측에서 이재명을 사기꾼으로 의심했다고 한다. 이에 이재명 본인이 추측건대 아마 사람을 써서 자신의 변호사 사무소에 이재명 본인이 앉아있는지 알아봤을 것 같다고 한다. 결혼 후에는 이동호, 이윤호 두 아들을 각각 1992년과 1993년에 낳았다.

 

 

 

 

5. 변호사 활동

성남시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인천시와 광주시의 노동상담소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활동을 하는 등 사회운동 뿐 아니라 인권 변호사 활동도 활발히 했다고 한다. 사법시험을 합격했으나 아직 자신만의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기 전에는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꼽히는 조영래 변호사 아래에서 망원동 수재 사건의 변호를 돕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였다. 이후 이재명이 자원봉사 활동을 마치고 본인의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려고 하자 조영래 변호사가 이재명으로 하여금 은행에서 500만원을 빌릴 수 있도록 흔쾌히 보증을 서 주었다고 한다.

 

1989년,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로 임명된 적이 있는 자니 윤이 남서울 골프장에서 여성캐디에게 골프채로 내리쳐 부상을 입은 피해자를 무료로 변론해주었다.
1995년, 당시 안기부에 체포되어 조사 도중 고문받던 김태년 당시 청년단체 활동가를 변호했다.
1995년, 빈민들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던 이해학 목사를 무료로 변론해주었다.
1995년, 당시 안기부에 체포되어 조사 도중 고문받던 김태년 당시 청년단체 활동가를 변호했다.
1996년, 민주화 운동을 하다 당국에 붙잡혀 수사 받던 도중 분신 자살 기도를 한 경희대학교 학생을 무료로 변론해주었다.
2006년 5월, 자신의 조카가 강동구 암사동에서 전 여자친구 모녀를 살해하자 변론을 맡아 조카가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2007년 3월에는 이종조카가 중학교에 다니는 중 성남시의 조폭조직인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이었는데, 그 때 4번에 걸쳐 문제가 생길때마다 변론해주었다고 밝혔다. 정확히는 국제마피아파 조직원 3명과 조카가 범죄단체 구성으로 인해 기소당했는데 그 중 두 명의 변호를 맡았다. 이 조카는 위의 살인사건을 저지른 조카와는 다른 조카이다.
2007년 8월, 흉기와 농약을 준비해 딸이 보는 앞에서 그 어머니인 연인을 흉기로 8차례 찔러 죽인 사건에서도 변호를 맡았다. 해당 사건에서도 이재명 변호사는 심신미약 및 심신상실을 주장해 피고인의 형기를 징역 15년으로 감형받았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와 관련해 일본 외무성측에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한 사실이 요미우리 신문 단독 보도로 확인되자 발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벌이다 체포된 대학생 7명의 변론을 담당했다.

 

 

 

6. 정치 입문

성남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6년 지방선거를 즈음하여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여 단수 공천으로 성남시장 후보로 출마한다. 결과는 전직 시장인 한나라당 이대엽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이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경선에서 조성준 후보에 밀려 공천 탈락하고, 대신 성남시 분당구 갑 선거구에 전략공천을 받아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고흥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정치 생활 초기엔 정동영의 지지자였다. 그것도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일명 정통, 정통들)의 대표로 선발되어 탄돌이로 활동하였으며, 그 모습이 뉴스에 나오거나 인터뷰로 다뤄지기도 했다. 후일 이 시기를 얘기하면 '내가 뭐 졸도 아니고' 같은 반응을 보이며 선을 그었지만, 정동영이 다양한 방면으로 지원하는 것을 보면 정동영계라고 보긴 애매해도 한동안 접점이 이어졌다.

 

[이재명] 사람 이재명 과거, 결혼, 정치경력 등 일생 정리

 

 

6-1. 경기도 성남시장 시기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경기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해 51.2%의 득표율을 얻어 당선되었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도 55.1%의 득표율을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심지어 부자동네라 서울의 강남권에도 비견되는 보수정당 강세지역인 분당구에서도 승리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시장이 된 직후 화제가 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시 재정 건전화에 착수했으며, 한편으로 공무원들의 매관매직 인사관행을 개선하였다.

이후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 재선에 도전하였으며 첫 당선 때보다 득표율이 3.9%p 더 올라 55.1%의 득표율을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특기할 점은 이재명이 진보 성향이 매우 뚜렷한 정치인인데 새누리당 강세 지역인 분당구에서도 득표율이 올랐다는 점. 첫 성남시장 선거에 당선됐을 때보다 무려 3.9%p가 증가하였다.

고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 시장실을 저층, 즉 2층부의 앞쪽으로 옮겨간 것은 물론, 부정부패를 막겠다며 시장실에 CCTV를 설치하라고 직접 지시하고 시민들, 특히 어린이들의 방문을 받는 등 개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시립 의료원 건설, 노후 주택 리모델링 지원,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건설 추진 등 친서민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건설안이 통과되기도 전에 무단강행을 했으며, 남경필 당시 경기도지사는 이 강행에 대해 소송을 걸었다. 이에 대해 해당 토론회에서 이재명은 왜 다음해엔 소송을 걸지 않았냐고 질문을 했는데,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심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추가로 소송을 걸지 않았다고 답이 돌아왔다. 단지 부패 세력에 대한 강경 발언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력 덕분에 문재인 전 당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함께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 언급될 정도로 그 지지도가 상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재명은 시장거래가격보다 비싼 '표준품셈'이라는 방식으로 건설 공사비를 산정하라는 중앙정부 지침에 반대하였다. 시장기준가격(표준시장단가)으로 자체발주한 성남시 서현도서관 건립공사에 369개 업체가 입찰했으며 성남시가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해 산정한 서현도서관 건립공사비는 총 207억원으로 표준품셈을 적용한 218억원 보다 약11억원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었다. 조달청은 성남시가 계산한 공사비가 너무 낮다며 4차례나 보완을 요구하는 등 표준품셈 산정을 강요했다. 하지만 결국 성남시는 정부의 비싼 공사비 산정을 거부하고 서현도서관 건립공사를 자체 발주했고 개찰을 완료했다. 그리고 이재명은 10억 이상 공공발주 건설 사업에 대한 세부내역 정보를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 최초로 2016년 4월 말부터 공개하였다. 설계내역서, 도급내역서, 하도급내역서, 원하도급 대비표, 설계변경 내역 등의 정보를 공개하여 고질적인 공공 공사비 부풀리기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성남시장 재직 당시 공약 이행률 94.1%를 기록하였다.

 

 

 

6-2. 모라토리엄 선언 후 종결


2010년,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성남시의 긴축 재정을 조정하여 지방채 발행, 회계 내 재산을 매각하는 등의 노력으로 마침내 2013년 모라토리엄 종결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그중 대부분은 판교신도시 전입금으로 충당되었다는 비판과 모라토리엄 선언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전임 시장이 전용해서 갖다 쓴 판교특별회계 비용이 분명히 성남시가 다시 채워 놓아는 두어야 하는 돈이 맞기는 하지만 이는 급박한 채무가 아닌 장기적인 투자를 위해 적립해 두어야 하는 성격의 것으로, LH를 비롯한 어떤 채권자도 빚을 독촉한 곳은 없었기 때문에 모라토리움 선언을 굳이 하지는 않아도 되는 빚이었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2010년 1,000억 원, 2011과 2012년에 2,000억 원을 갚았을 정도로 재정 여건이 풍족했던 성남시가 굳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던 것은, 판교신도시 특별회계에서 5,200억에 달하는 돈을 끌어다 신청사 건립 등 일반 회계에 남용하였던 한나라당 이대엽 전임 시장의 자금유용과 시재정 악화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지우기 위한 정치적 경고였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회계적으로 부채가 있으면 도정 감사 때 별로 좋은 평을 받지 못 하거니와, 재정자립도란 건 언제든지 한순간에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일찍 갚은 건 성남시의 부채비율을 확실히 더 개선할 수가 있었다는 평이다. 그만큼 이대엽의 문제가 많았다는 얘기다.

 

 


6-3. 무상 복지 확대


‘청년배당·무상 산후조리·무상교복 지원’의 3대 무상복지 사업을 진행하였다. 2016년 113억 원의 예산을 확보하여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의 청년 약 11,300여 명에게 분기별로 50만 원씩을 지급하였다. 그 밖에 중학교 신입생 약 8,900명에게 교복비를 지급하였으며, 성남시 신생아 약 9천여 명을 대상으로 무상 산후조리 지원사업도 실시하였다. 여담으로 무상교복 사업을 벤치마킹해 가져간 정찬민 용인시장은 보수정당 소속임에도 이재명 당시 시장과 매우 원만한 관계를 보여주었다.

본인의 복지 정책 확대에 대해 '그 돈은 다 어디서 구할 거냐'는 물음에 "쓸데없는 토목공사, 부정부패와 새는 세금을 통제하니까 예산이 정말로 많아지더라'' 성남시에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도둑놈이 너무 많았던 것이라는 말로 회답했다.

이러한 복지 정책과 성남시 부채 탕감을 위해 개발예산을 축소한 결과 약 2,700억 원의 가용 예산이 마련되었다. 일각에서는 주민세 인상을 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고 2016년 현재도 4천 원을 유지 중이다. 이는 2,100억 원인 서울과 1,500억 원인 용인을 웃도는 수준으로 지자체 중 가장 많은 수치이다. 가용 예산이 많으면 주민들의 요구에 맞게 정책을 변화할 수 있고 수요가 불안정한 복지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정책보다 복지정책을 중요시하는 성남과 서울이 이러한 가용예산을 높은 수준으로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헌데 2016년 4월에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러한 가용예산을 근거로 하면서 "성남시 등의 부자 지자체의 포퓰리즘을 줄여야 한다"며, 법인지방소득세의 50%를 도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이재명은 페이스북을 통해 즉각 반발했다.

실제로 지자체 지방세에 중앙정부의 교부세까지 모두 포함된 1인당 예산을 보면 성남시는 경기도 내에서 중간 정도로 결코 높은 편은 아니다. 실제로 과천시나 동두천시의 경우 1인당 예산이 성남시의 거의 2배에 육박한다.

 

 

 

 

6-4. 청년배당

 

2016년 1월, 특정 나이의 청년들에게 청년 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성남사랑상품권'을 지급했는데, 실시 이전부터 반대 여론이 강했던 정책을 강행한 데다 이것을 상품권 현금깡으로 되파는 일이 일어나 논란이 일었다. 청년들의 사기 증진과 전통시장, 소매점의 매출을 올리는 등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었지만 현금화 이후 다른 식의 소비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정책이라는 논란이다. 이에 성남시는 해당 거래 글들을 삭제 요청하였다.

문제가 불거진 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성남사랑상품권이 할인된 가격으로 거래되는 게시물들을 캡쳐한 글이 올라왔을 때부터인데, 해당 글 자체는 날짜가 드러나지 않아 신뢰성이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1월 20일 이후 거래가 발생해 실제로 성남시청 비서실에서 거래 관련 글을 제재해달라는 글을 올린 바 있는 데다가, 한국경제 기자의 매입업체 취재에 따르면 1월 20일 이후에 현금거래된 상품권 중 청년배당으로 지급된 상품권이 있었으니 부작용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현금화 논란에 대해 이재명은 트위터를 통해 '그렇다고 현금을 줄 수는 없지 않느냐, 어찌됐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고 했으며 해당 비판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일베저장소에 대해 강경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주었다. 성남사랑상품권은 청년 배당과 무관하게 이전부터 시행되어 온 만큼 화제가 되자 새삼 부작용이 주목받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지 정책은 대상을 확장할수록 부작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점은 미리 예측 가능한 만큼 유기명 카드화 등의 개선 정책을 미리 시행하였으면 문제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청년배당이 '소득'으로 책정되는 문제가 있어 기초생활보장 청년들이 상품권을 받을 시 생계금을 받지 못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또한 청년배당 시 제세공과금 20%와 지방세 2%를 물려야 하지 않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청년배당과 관련된 성남시의 취지가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현금화 가능성과 같은 문제와 더불어 이와 같은 부작용도 해결해야할 것이다. 일단 카드 형식으로 개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1월 27일 성남 지역 26개 상인회에서는 '청년들의 활로 모색이라는 정책의 본래 취지는 물론이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정책'이라며 이 시장의 성남사랑상품권 정책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성남사랑 상품권은 기존의 지자체 발행 상품권과는 다르게 성남시내 거의 모든 상점(대형마트, 유흥업소 제외)에서 사용가능하다. 치킨집이나 약국 문방구 같은 곳도 가맹점으로 등록되어있고 택시비로도 낼 수 있다.

 

 


6-5. 지방재정개혁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지방재정개혁을 둘러싸고 2016년 5월 들어서 정부와 수원·화성·용인·과천·고양·성남 등 6개 지방자치단체 간에 본격적으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재명이 그 동안 여러 문제로 정부와 각을 많이 세웠고 좋은 뜻으로나 나쁜 뜻으로나 위에 언급한 6개 지방자치단체장 중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이 문제 관련해서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있다.

 

먼저 문제가 된 지방재정 개편안에 관한 찬성, 반대 입장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따르면 경기도에서 재정자립도가 높은 수원·화성·용인·과천·고양·성남 6개 지자체의 지방세를 가져다가 재정자립도가 낮은 경기도 내 다른 25개 지자체에 조정교부금으로 나눠주도록 되어 있다. 즉, 얼핏 보면 부자 지자체의 지방세를 가난한 지자체에게 나누어 주자는 것으로 볼 수 있어서, 이 개편안이 실행되면 이익을 보게 될 농어촌 지자체에서는 대체적으로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지방세를 최고 80%를 뺏기게 생긴 6개 지자체에서는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나오는 재정자립도 top6이 통계 착시현상으로 인한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라며 각 지자체의 면적이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재정자립도만 기준으로 놓고 따졌다며 반발 중이다. 이에 대해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으로 큰 타격을 입을 성남시도 나머지 5개 지자체와 함께 반대하고 있고 이재명도 적극적으로 반대의 뜻을 밝히고 있다. 반대 의견들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실행되려면 재정독립이 핵심인데 그런 재정 문제에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지방자치제도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
둘째, 대다수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것은 따지고 보면 정부 책임이다. 왜냐하면 전체 행정사무 중 40%를 지자체가 처리하고 있는데 정부가 지방세는 20%밖에 인정해주지 않으니 다들 재정자립도가 형편없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셋째, 정부가 재정자립도 높은 소수의 지자체에게서 지방세를 잔뜩 거둬다가 나머지 가난한 지자체에 나눠줘봤자 별 도움이 안 된다. 왜냐하면 가난한 지자체가 너무 많아서 쪼개어 나누어주다 보면 한 지자체당 돌아가는 조정교부금이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즉 가난한 지자체는 조정교부금을 받아도 앞으로 계속 재정자립도가 낮을 것이고, 그나마 사정이 나았던 지자체는 지방세 뺏겨서 재정자립도가 낮아질테니 하향평준화가 되어 모두에게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 관련해서 성남시에서는 지방재정 개편안을 반대한다는 플래카드를 성남시청을 비롯한 관내 여러 곳에 걸어놓고 있고, 성남시를 운행하는 버스에도 지방재정 개편안 반대의 공고문을 붙여놓았다. 그리고 이재명은 2016년 6월 7일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이 와중에 정부합동감사를 시행 중이던 행정자치부에서 6월 14일에 성남시에 한 요구 때문에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문제의 요구는 2014년 1월∼2016년 6월 중 특정된 90일간의 이재명의 일정을 제출하라는 것이다. 이재명이 단식해가며 정부와 맞서는 상황에 이런 요구를 한 것 자체만으로도 보복성 감사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 있는데, 그 요구를 정식 공문 형식을 안 갖추고 그냥 스프링노트 한장 쭉 찢어낸 메모 그대로 팩스로 보내서 일이 더욱 시끄러워졌다.

한편, 이재명은 이런 행정자치부의 요구에 관하여 "그동안 문제가 된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사건 당일 7시간 동안의 행적을 밝힌다면, 나의 90일 동안의 행정 역시 밝히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6월 17일, 더불어민주당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겠으니 단식을 중단해달라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11일 만에 단식을 중단하였다. 이후 썰전에 나와 직접 밝힌 소감에 따르면 "단식은 시작하긴 쉬운데 중단하기가 어렵다. 명분 있는 출구전략이 중요한데, 김종인 대표가 그 명분을 줬다며 잘해주셨다."는 뉘앙스를 내비쳤다.

 

국회부의장을 지냈던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의원도 당권에 도전하지 말고 대권에 도전하라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국 이재명은 7월 17일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불출마 선언을 했고,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처음으로 이듬해인 2017년 1월 23일 19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재명] 사람 이재명 과거, 결혼, 정치경력 등 일생 정리

 

 

 

7. 제19대 대통령 선거


7-1. 당내 경선

이재명은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 중 하나로, 강경한 정치 발언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6월에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권력 행사는 잔인하게 해야 한다. 죽도록 싸워서 깨부셔야 한다."라고 말해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이런 발언에 진보 네티즌들이 붙여준 별명이 일명 전투형 노무현. 본인도 미디어(페이스북, 트위터)를 활용해 시정홍보, 소통에 상당히 신경쓰고 있기도 하고, 이러한 지지에 힘입어 19대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게 된다. 이미 그는 복지정책, 재정안정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성남시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강경한 화법에 거부감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보통 이재명을 언론에선 한국판 트럼프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이재명 본인은 "내가 말을 직설적으로 하긴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처럼 사회적인 막말은 안 한다"며 자긴 "성공한 버니 샌더스처럼 되고 싶다."고 답하기도 했다. 실제 정치성향이나 수치를 자주 인용하는 화법 등은 버니 샌더스에 가깝지만 지나친 막말 같은 경우는 트럼프 혹은 두테르테와 비슷하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선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좋아하고 지향한다고. # 물론 전원책은 두테르테라고 깠다 실제 이재명이 밀고 있는 대권 정책의 이름도 뉴딜성장정책이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부상하자 사건의 자세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극초반에는 탄핵 가능성을 부정했으나 이후 다양한 혐의가 속속들이 드러나자 태세를 바꿔 하야를 주장하였다. 이후부터 박근혜 규탄 관련 집회에서 연설하며 박근혜의 퇴진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7-2. 촛불집회에서의 연설

당시 연설에서 이재명은 국가 권력과 공직자의 지위 및 역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역설하며,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 연설이 화제가 되며 대외적으론 최초로 하야를 언급한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란 타이틀을 얻었다. 이를 통해, 이전부터 성남시장이라는 인지도와 SNS를 통한 지지자들과의 소통이 하야 발언과 시너지 효과를 내 지지율이 급반등, 안희정 충청남도 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을 제치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이어 야권 대선후보 지지율 2위를 기록했다.

특히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충성도 높은 민주당 지지층의 지지세가 이재명에게 몰리고 있어 최대 20%까지도 지지율이 오를 수 있다고 본다”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연출했던 극적인 지지율 반전 드라마를 쓸 수도 있다는 기대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이재명 역시 호남에서 가파르게 지지율이 상승하여 문재인이 4.8% 하락한 20.9% 안철수가 3.8% 상승한 20.2% 다음인 18%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무려 11.9%가 오른 것으로 호남에서 상승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1월 30일 리서치뷰 조사에 의하면 이재명은 반기문을 제치고 처음으로 2위에 등극했다. 이 여론조사에서 눈여겨 볼 것은 호남 지지율은 문재인에게 밀렸으나 확실히 안철수를 밀어냈고 특히 경북/대구에서 여론조사 1위를 함으로써 TK 출신 야당 정치인으로써 TK 지역 확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 있다. 호남과 TK가 이재명 때문에 간접적으로 정치적으로 동맹을 맺게 하는 재밌는 광경이 연출되는 순간 그 외에도 안희정 혹은 반기문 충청도 대망론이 나오고 있는 충청도에서도 여론조사 1위다. 다만 리서치뷰 조사에서는 충남도지사 안희정이 빠져있고, 안희정 후보가 포함되어 있는 다른 여론 조사에서도 보통 문재인 반기문 다음으로 2~3위를 왔다 갔다 한다.

해외 언론에서도 이례적으로 상당히 관심 깊게 바라보는 대권주자 중 한 명인데, 이재명의 선전을 브렉시트나 샌더스의 선전,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 등과 같은, 2016년 들어 두드러지는 서방 세계 기존 정치권의 실패에 환멸한 유권자들의 심판론 경향이 한국에서도 나타난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세계적인 포퓰리즘의 일환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는 의견도 있긴 하다. 그러나 트럼프와는 사실상 인생사와 성향이 정반대이며 포퓰리스트라는 말을 듣는 트럼프와 달리 이재명 공약 이행률이 높아 트럼프와는 다른 점이 많아 같다고 보긴 무리가 있다. 그러나 시원시원하고 강경한 발언을 하는, 이재명식으로 말하자면 애매모호한 정치적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 지도자를 대중들이 좋아한다는 것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일각에선 이재명이 대선주자로 부각되는 걸 기피하거나 원치 않아하는 측이 밀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어찌되었든 이 별명의 생산지는 일본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반일 인사라며 경계하기도 하는데, 정작 일본 방송사가 취재한 인터뷰에선 일본인들을 좋아한다고 하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일본에서 보는 소위 친일정권이었다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한일 관계는 삐그덕거렸던 것을 볼 때 일본언론에서 너무 설레발치는 경향도 있어보인다.

그러나 2016년 11~12월에 한창이였던 촛불집회가 국회의 탄핵안 가결 및 헌법재판소의 본격적인 탄핵안 심판 시작과 함께 소강상태에 접어듦에 따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끌었던 이재명의 지지율도 하락하였다. 그리고 그 지지율은 민주당 내 유력 대권 주자였던 문재인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결국 이재명의 첫 번째 대선 도전은 당내 경선에서 347,647표를 득표하며 936,419표를 얻은 문재인, 353,631표를 얻은 안희정에 밀려 3위로 마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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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경선 패배 확정 후 승복 연설

이재명은 당내 경선 패배가 확정된 후 경선장을 바로 떠나지 않고 선거인단석으로 올라와 연설을 해 당시 화제가 됐었다. 사실, 당시 이재명 지지자들은 경선 패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최종 후보로 결정된 문재인에게 집에 가라거나 안철수를 연호하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이재명은 경선 패배에 승복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혀 이러한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선거인단석에서 연설을 한 것이다. 만일 이재명이 그냥 퇴장했다면 두고두고 욕을 먹었을 것이다.

 


7-3.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같은 경선 주자였던 안희정, 최성과 추미애 당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과 함께 광화문에서 축하를 하였다. 현장에서 광화문에 시민들이 이재명이 마이크를 잡자 연신 이재명을 연호하였고, 그는 당선인은 이재명이 아니라 문재인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후 끝날듯 끝나지 않는 연설을 마치며 "역사가 기록할 새로운 나라, 함께 만들어갑시다!"라고 말하며 자신도 문재인 정부를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사람 이재명 과거, 결혼, 정치경력 등 일생 정리

 


7-4. 노무현 대통령 제8주기 추모식

노무현 대통령 제8주기 추모식에 안희정, 유시민과 참가했다. 물론 일각에선 정세균, 박원순 같은 범 친노보다 더 노무현과 관련이 없지 않느냐는 말도 있었지만, 이재명은 본디 사법고시에서 검사가 될 수 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강연을 들은 후에 변호사로 활동하게 되었고 실제로 성향도 비슷하고 전투형 노무현이라는 별명도 있는 지라 큰 무리가 있지는 않다. 실제로 해당 행사에선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 해당 행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안 지사처럼 가까이 하진 못해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대였다고 밝혔고, 문재인 정부는 기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지율이 오르고 지금같은 추진력이 있어주길 바란다고 했다지금 보면 발언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날을 세운 이재명이 누그러 트렸다는 말도 있지만, 이는 잘 모르는 말로 이재명은 문재인, 안희정을 적으로 규정한 적은 없고 단지 경선 과정에서의 서로간의 마찰과 네거티브 였기에, 같은 당의 대통령인 문재인을 비난할 이유가 하등 없기도 하다.

실제로 경선 중에 '아 좀 살살할 걸' 하고 후회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자신은 사실상 대권 주자로써 신인이라 찔러야 관심을 얻기 때문이였다고, 자기가 경선때 막하지만 않았으면 욕을 덜 먹었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자아 비판을 하였다. 

 

김어준 : 알면서 왜 그랬어요?

이재명 : 한번 이겨볼라고 그랬다니까!

 

사실, 경선 과정에서 상대방들을 과격하게 공격한 전략 때문에 민주당의 주 지지층들의 이재명에 대한 호감도가 꽤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경선이 끝난 후 안희정 지사의 아들과 함께, 이재명의 아들이 문재인 후보의 선거운동에 나선데다, 자신이 시장직을 내려 놓고 문재인 후보의 선거 운동을 도울지에 대한 투표나 제윤경, 이종걸 등 범이재명계 의원들이 문재인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왔고 대선결과도 민주당의 승리로 끝났으며 대선 개표 시간 때 다른 경선후보들과 같이 광화문 현장에 나와 문재인 대통령의 승리에 진심으로 축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경선과정에서의 논란도 점차 사라졌다.

게다가 홍준표나 이언주 등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비판을 가하는 야당 인사들을 이재명이 돌려까는 스탠스를 보여줌에 따라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재명이 이전의 사이다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와서 그야말로 든든한 아군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라며 이재명에 대해 높은 호감도도 올라가는 추세다. 자신의 주도 하에 지지자를 모아왔던 팬클럽인 손가락혁명군은 이재명 지지를 유지하는 재명투게더와 반문재인 성향을 유지하는 인원들로 분화되었으며, 이 중 반문재인 트롤러들이 다시 모인 손가락혁명군2를 이재명 스스로가 "자기들끼리 만든 것"이라 말하며 확실히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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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민선 7기 경기도지사 시기

 

8-1. 출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재명이 내부 비판을 안 한다며 유해졌다거나 이재명이 문빠가 되었다는 극성 지지자의 의견에는 자신과 문재인은 정적이 아니며 자신은 네거티브를 반성하고 있다고 한다. 썰전에서 순간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너무 달렸다고 회고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 세력과 더불어 진보세력까지 성장해야 하기에 지금은 그들을 비판하는 외부에게 초점을 맞춰야지 내부 총질을 할 시간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인터뷰에 알 수 있듯이 대선을 겪은 이후 생각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평을 들었다.

SBS 예능인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 방송 초기에 부인과 같이 패널로 출연했고, 출연 이후엔 평가는 젊은 층과 여성 층, 지지층에선 인간적인 면을 보았다는 말을 하거나 호감이 생겼다 식의 반응이 늘었다. 본인 역시 방송 출연 이후 시민들이 더욱 친밀하게 다가온다고 말하기도. 반면, 지방선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 출연한다는 언론의 보도에 좋은 이미지를 쌓기 위한 작업이라는 비아냥도 간혹 들린다. 보수 성향 내지 친문 리버럴 성향의 이들 중 일부는 정치적 쇼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차기 대권 주자로서 다음 행보에 많은 관심이 모였는데, 체급을 올려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택했다. 일각에서는 서울특별시장 출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지만, 본인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3선에 도전한다면 자신은 서울시 지방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성향을 지닌 식구들끼리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중앙정계 진출의 경우 그의 장점인 행정능력을 내세우기 힘들고, 같이 경선에 참여한 안희정 전 지사에 비해 당내 주류인 친노/친문 의원들하고 접점이 별로 없어 처음부터 잘 이야기되지 않은 선택지였다.

2018년 3월 2일에 공직자 사퇴 시한인 15일에 성남시장을 사퇴할 것임을 밝혔다. 자치단체장이 사임하려면 사임하기 10일 전까지 지방의회와 의장에게 통보해야 하는 지방자치법에 따라서 일찍 발표한 것인데, 3월 2일이 금요일이고, 다음 주 월요일이 5일이라서 5일에 발표하면 시한이 빠듯해서 2일에 미리 발표하게 되었다. 이후 2018년 3월 14일 성남시청에서 퇴임식을 갖고, 다음날 3월 15일 성남시장을 사퇴하였다.

 

3월 21일, 경기도지사 예비후보 등록후 3월 27일, 경기도지사 출마를 공신 선언했다.

이후 전해철, 양기대 후보를 제치고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여 경기도지사 후보 선출이 확정되었다. 참고로 일반 안심번호 여론조사에서는 이재명이 65%대로 압도했지만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이재명을 싫어하는 친문 권리당원들의 결집으로 전해철과 경합이 나왔는데, 실제로 친문 성향 사이트들에서는 이재명에 대한 비토가 심해서 전해철을 지지하고 전해철이 경선 탈락하니 이재명에게 표주기 싫다, 어떻게든 후보 등록 전에 사퇴시키거나 설령 남경필이 재선해도 문통과 민주당에 해가 될 암세포를 적출한 거니 상관없다는 말이 나왔다. 이재명으로서는 일반 여론에서의 우세를 지키고 민주당 내부의 비토 세력을 어떻게 설득하고 달랠 것인지가 큰 숙제다.

경선 이후 같이 경쟁했던 전해철 의원과 양기대 전 광명시장에게 “선거를 위해 단순히 합치자는 게 아니다. 선거에서 끝나지 않고 경기도정을 (운영)할 때도 역할을 나눠 같이 해주면 좋겠다”라며 공동선거대책위원회 참여를 제안했고, 수락을 받았다.

 

 

[이재명] 사람 이재명 과거, 결혼, 정치경력 등 일생 정리

 

 

 


8-2. 당선 이후


2019년 4월, 이재명 지사가 추진하는 청년연금 사업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보건복지부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청년연금이 '연대 원리'와 '성실 납부'라는 사회보험의 기본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번 내주고 안 내는 거라 납부예외자만 양성할 것이라고 보았다. 

2019년 5월, "여성이 주도하는 시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여성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 지금까지는 관행적으로 똑같은 능력을 가져도 남성을 우대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이제는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과 기업활동이 장려돼야 한다." 라고 발표하며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를 확장 이전했다.

친문계와 사이가 안 좋은 걸로 유명했지만, 1심 무죄 이후 문재인 정부 및 친문계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 곧 민선7기 경기도의 성과로 직결된다"는 게 이재명 지사의 입장이었다. 또한 지방도지사로선 이례적으로 국무회의[56]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중앙정계로의 야욕을 보이는 상황이기도 하다. 5월 23일, 청와대에서는 '경기도와 관련된 사안'에 한해서 국무회의 참석을 허가해주면서, 이재명 지사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9. 코로나19 관련


코로나 정국에서 안철수와 더불어 가장 수혜를 본 정치인으로 꼽힌다. 경기도내 신천지 유관시설 현황 공개, 과천교회 진입을 통한 명단 확보, 신천지 시설 폐쇄 등으로 해결사의 이미지를 가져가 사이다 같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2021년 초반부터 시작된 수도권 유행을 기점으로 서울과 경기도가 가장 많은 감염자수를 기록하게 되는 오명과 당내경선동안 지사직을 내려놓지 않는 모습을 통해 코로나 진정에 관심이 없는게 아니냔 이미지를 가져가게 되었다.

3월 13일 오후, 이재명 경기지사의 모친 구호명 여사(88세)가 사망하면서, 조용히 가족장을 치르겠다고 말했다. 번잡함 및 코로나19 감염을 피하기 위해 조화도 사양했고 음식도 제공하지 않았다. 차후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묘소와 합장하였고 대법원 판결 종료 후 아내와 함께 찾아 인사드리기도 했다.

3월 17일, 경기도는 감염 예방수칙(방역지침)을 지키지 않은 100여개 교회에 대해 29일까지 ‘밀집집회’ 예배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확진자가 발생한 교회가 아닌 일반 교회에 행정명령을 내린 것은 처음이나, 모든 교회가 아닌 경기도가 제시한 지침을 위반한 교회를 대상으로 집행했다. 아울러 행정명령 위반으로 인해 확진자 발생 시 구상권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으론 이미 11일에 이재명은 다른 지역과 달리 종교시설 사용에 대해 규제가 목적이 아니라며 조건부 허가를 내렸던 상황이라 혼선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다.

3월 18일, 교회 외에도 비말을 통한 전파 가능성이 큰 클럽, 콜라텍, PC방, 노래방 같은 다중이용시설을 대상으로 영업제한 행정명령을 내렸다. 명령 위반 시 고발 및 직객영업금지 조치하며, 명령 위반으로 확진자 발생시 구상권 청구도 하겠다고 밝혔다.

 

 

 

 

10. 재판


2018년 10월 말에 들어서 이재명은 배우 김부선과의 스캔들 의혹, 친형 이재선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관한 직권남용 혐의, 검사 사칭 논란 관련 허위 사실 유포 혐의,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허위사실 유포 혐의 건 등으로 재판중인데, 지사직 유지 여부가 걸린 중차대한 건이 다수 포함되어있어 이것이 어떻게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이재명의 정치, 경제적 생명이 걸리게 되었다. 이 중 김부선과의 스캔들 의혹은 검찰이 12월에 최종적으로 무혐의 및 불기소 결론을 내리고 당사자인 김부선도 고소를 취하하면서 종결되었다. 그러나 대장동, 강제입원, 허위사실 유포 혐의 등에 대해서는 검찰이 기소 결정을 내려 재판에 회부되었다. 한편 또 다른 쟁점인 혜경궁 김씨 사건와 관련해서는 증거 부족으로 인한 무혐의 및 불기소 결론이 내려졌으며 이에 바른미래당 김영환 전 의원 측에서 이 건에 대해 재정신청을 하였으나 이듬해인 2019년 3월, 법원이 김영환의 재정신청을 기각함으로서 이 사건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2019년 5월 16일, 친형 강제 입원,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2019년 9월 6일, 항소심에서 강제입원에 대한 직권남용, 대장동 개발에 대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포, 검사 사칭에 대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포 혐의는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강제입원에 대해 사실과 다른 사실을 당선목적으로 토론회에서 발언했기에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포죄가 유죄로 인정되어 벌금 300만원 형을 받고 당선무효 위기에 몰렸다.

한편, 본인의 재판과 관련해 1심때부터 전직 고위 판검사. 2심때엔 전 대법관까지 동원한 '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는데 이에 대해 전관예우를 통해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수원지방검찰청 공안부장 출신인 이태형 변호사, 이상훈 전 대법관, 이홍훈 전 대법관과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이 이재명 지사의 변호인단에 속해 있다. 게다가 이재명은 과거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법조계 전관예우를 뿌리 뽑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상고 제기 후 두 달 채 못 미치는 기간 동안 무려 10만 명이 넘는 인원의 이재명의 선처를 구하는 내용의 탄원서가 대법원에 답지했으며 이에 상반되는 엄벌 촉구 탄원도 250건 이상 접수되었다. 그러나 상고심은 법률심이어서 탄원서는 애초에 대법원의 고려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두고 헤럴드경제는 "대법원에 ‘선처 자비’는 없다"라는 기사를 냈다. 자유한국당 의원 중에는 이를 두고 "팬덤이 있는 정치인은 무죄를 호소하고 평범한 서민은 아무리 옳아도 지원을 못 받는다면 ‘팬덤 무죄, 무팬덤 유죄’인가"라고 비판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대법원 2부는 법정 처리기한을 넘기도록 위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결국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다.

2020년 7월 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다수의견으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다수의견(7명) 은 불리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반대 사실을 공표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고 본 반면, 소수의견(5명)은 이 지사가 불리한 사실은 숨기고 유리한 사실만을 덧붙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검찰측의 나머지 상고에 대해서는 모두 기각했다. 아직 확정판결은 안 났지만 상급심인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함에 따라 이재명은 도지사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공직선거법 상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하여서만 다루며, 1심부터 무죄가 나온 형 이재선 씨에 대한 강제입원에 따른 직권남용은 검사의 상고가 대법원에서 기각됨에 따라 무죄 확정이 됐다.

이번 판결을 통해 경기도지사 직을 유지하게 됨은 물론 유력한 민주당의 대선주자로 급부상하게 되어 절체절명의 순간을 지나 위기를 기회로 바꾼 상황이 되었다. 실제로 17일 YTN의 의뢰를 받고 리얼미터에서 조사한 대선주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강력한 1위였던 이낙연이 지지율이 빠져 23.3%에 머문 반면, 이재명은 역대 최고 지지율은 18.7%로 올라서며 오차범위 내에서 이낙연을 추격하거나 추월하기도 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11.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


11-1. 출마


2021년 7월 1일 “국민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아닌 주권자를 대리하는 일꾼으로서 저 높은 곳이 아니라 국민 곁에 있겠다”며 대선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이날 영상을 통해 출마 선언을 하며 “자랑스러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토대 위에 필요한 것은 더하고, 부족한 것은 채우며, 잘못은 고쳐 더 유능한 4기 민주당 정권, 더 새로운 이재명 정부로 국민 앞에 서겠다”고 밝혔다. “위기의 원인은 불공정과 양극화에 있다”며 “공정성 확보, 불평등과 양극화 완화, 복지확충에 더해 경제적 기본권이 보장돼 모두가 최소한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사회여야 지속적 성장과 국민의 더 나은 삶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를 읽으면서 시작한 출마 선언에는 공정이 7번, 불공정이 6번, 성장이 11번 언급됐다. 2017년 출마선언에서 언급 횟수가 4번에 그쳤던 ‘성장’의 비중이 이번엔 더욱 커졌다.

 

 

11-2. 대선후보 경선 참가


2021년 4월에는 친문 정치인들이 9월로 예정된 대선후보 경선을 코로나와 흥행을 이유로 11월로 미루자는 논의를 시작했다. 이재명은 이에 대해 처음에 세운 계획대로 하자는 입장을 보였고, 결국 송영길은 당대표의 독단으로 경선을 강행하면서 입지가 생기게 되었다. 이후 당 내각과 지도부, 선관위에 친이재명 정치인들이 대거 포진되면서 위세가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강행은 일부 후보의 경선캠프에도 코로나가 퍼지고 결국 사망자까지 나오게되자 어쩔 수 없이 경선과정이 미뤄지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2021년 7월 10일, 대선 후원 모금계좌를 열었으며 하루 만에 9억원이 넘게 모금됐다. 이는 19대 대선 때 문재인 후보의 기록을 앞지른 것이다. 캠프 측은 "특히 전체 후원금 모금액 중 95.1%가 10만원 이하의 소액 후원"고 밝혔다.

2021년 7월 11일, 이재명은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청소노동자의 유족들과 여정성 서울대 교육부총장과 면담했다. 이재명은 당사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진상조사를 학교 측에 당부했다. 이재명은 자신의 여동생이 "오빠 덕 안 보겠다며 세상 떠나는 날까지 현장 청소노동자로 일했다. 쓰러진 날도 새벽에 나가 일하던 중이었다."면서 "여동생 생각이 났다. 늘 생각한다. 도대체 제가 뭐라고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빚지며 여기까지 왔는지, 백 번이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도 못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2021년 7월 17일, 일부 이낙연 후보 지지자의 SNS 상에서 이재명의 안보의식을 문제삼아 이재명은 다른 군필자와 달리 원팀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포스터와 글들이 올라왔다. 이에 김두관 후보가 장애를 갖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부당한 공격이라고 여론을 바꾸자, 이재명은 자신의 SNS에 "차마 어디 호소할 곳도 없고 마음만 아렸다"며 "장애의 설움을 이해하고 위로해 준 김두관 후보 말씀에 감사하다"고 적었다. 이재명은 소년공 시절에 입은 부상으로 인해 휘어진 팔 사진을 공개하면서 "프레스에 눌려 성장판 손상으로 비틀어져 버린 왼팔을 숨기려고 한여름에도 긴 팔 셔츠만 입는 절 보며 어머니는 속울음 삼켰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7월 25일 이재명은 사립학교 교원 채용 과정에서 한 명당 1억원 이상 내고 채용된 사건을 거론하면서 사학 개혁을 다짐했다. 그는 "사학 개혁은 민주정부의 발자취가 담긴 개혁,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였던 개혁이다"며 "당신의 발자취를 따라 더 멀리, 끝까지 가겠다는 다짐을 올린다"고 선언했다.

2021년 10월 10일, 50.29%의 득표율로 결선 없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

 

 

 

[이재명] 사람 이재명 과거, 결혼, 정치경력 등 일생 정리

 

 

 

12.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활동

 

  • 2021년 10월 25일 도지사직에서 사퇴했다. 
  • 2021년 10월 27일, 대선 공약으로 음식점 허가 총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량한 규제는 필요하다. 자살할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불량식품을 사먹을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라고 첨언했다.
  • 2021년 10월 31일, 성평등과 페미니즘을 언급하며 지지율이 낮은 2030 여성을 집중 공략하는 행보를 보였다.
  • 2021년 11월 5일, 20대 대선 국민의힘 경선이 끝나는 날에 보수의 텃밭인 대구광역시의 경북대학교와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 2021년 11월 8일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원들에게 2030 남성이 홍준표를 지지한 이유를 적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글을 공유하며 읽어보라고 권했다. 이후 해당 게시물의 내용에 동의하거나 공감하는 것은 아니라고 뒤이어 밝히며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 2021년 11월 9일, 새벽 1시에 부인 김혜경이 현기증으로 쓰러져 낙상 사고를 당하자 간병을 이유로 당일 일정을 취소했다. 이를 두고 부상 원인이 무엇일지 온라인에서 여러 추측이 나오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가짜뉴스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 이재명 측에서는 119구급차 CCTV 영상, 진료확인서, 119 신고내역 등을 공개했다.
    2021년 11월 9일 오전, 선거대책위원회 온라인소통단장을 맡고 있는 김남국 의원을 후보자 직속 ‘청년플랫폼’ 위원으로 임명했다. 김남국 의원은 과거 2030대들이 다수 활동하는 에펨코리아에서 네티즌들과 소통한 이력이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약점으로 평가받는 2030 남성 공략의 선봉장으로 내세웠다고 평가받았다.
  • 2021년 11월 11일, 존 오소프 미국 상원의원과의 접견에서 "미국의 지원과 협력 때문에 전쟁을 또 이겨서 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고, 또 미국의 경제적 지원 협력 덕분에 오늘날 경제선진국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냈습니다."고 한미동맹의 성과를 강조하면서도,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이유는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한 승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재명 후보는 “오소프 의원이 한일 관계와 식민지 역사를 잘 알고 있다고 들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으로 언급했다”고 밝혔다.
  • 같은 날 소확행 공약 시리즈를 출시하며, 1호 공약으로 가상화폐 과세 1년 유예를 선보였다. 이어 2호 공약으로 이륜차 전면 번호판의 의무화, 소음 단속 강화를 말했다.
  • 11월 12일, ‘매타버스’ 순회를 하며 첫 방문지로 부울경을 택해 시민들과 소통했다. "남녀 전 생애 전체로 보면 여성들이 너무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아버지들은 청소 잘 안하시잖아요? 안그래요? 뿐만 아니라 취업에서도 여성은 남성의 임금 60% 수준밖에 안됩니다. 승진도 안되지, 양육하느라 경력단절 후 복귀도 안되지. 여성이 피해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하면 ‘페미니즘’이라 부른다. 여성과 남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라고 밝혔다. 
  • 11월 13일, 2021년 11월 12일, 매타버스 일정으로 부산을 방문했다. 여기서 그는 유엔 기념공원을 참배하고 스타트업, 벤처인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솔직히 부산 재미 없잖아. 강남 같진 않아."라고 부산이 재미가 없는 도시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발언을 남겼다. 뒤이어 성 할당제에서 실제로 혜택을 보는 것은 남성이라며 할당제에 대한 의견을 덧붙였다.
  • 11월 16일, "저도 전과자다. 범법을 하는 때도 있다. 범법자로 몰릴 때도 있다."라고 자신의 전과를 정의를 위해서였다고 포장하면서 불법적 투쟁활동을 한 환경운동가들에게 공감의식을 표했다.
  • 11월 19일, ‘매타버스’ 순회 두번째 일정으로 충청권을 방문했다. 19일 대전을 방문했으며, 이것에서도 청년과 만나는 행보를 보였다. 지스타2021과 관련해 ‘세기의 개임대전’에 참석하고 20, 21일에는 충남북을 방문해 학생, 청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 11월 20일, 디시인사이드 이재명 마이너 갤러리에 직접 인증을 남기며 실시간 베스트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해당 글은 조회수 21만에 추천 6000, 비추천 4500에 9000개의 덧글을 받으며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이재명은 11월 10일에도 前 홍준표 지지자가 이재명 마이너 갤러리에 남긴 글을 공유하면서 엄청난 파문을 몰고왔는데, 여기에 더해 DC에 인증글까지 남기면서 2030 남성층을 공략하려는 행보를 보였다.
  • 11월 24일, 송영길을 제외한 주요 당직자들을 전원 물갈이했으며 같은날 청년선대위를 출범시키면서 MZ세대 공략을 시작했다. 같은날 페이스북을 통해 데이트 폭력을 근절시키겠다는 메세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과거 암사동 모녀 살인 사건을 변호한 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 같은날 소확행 공약 13호로 전기차 보조금 확대를 선보였다.
  • 11월 26일, "전과 4범' 나쁜 짓 때문 아냐. 티끌만큼 걸리면 태산같이 처벌받아"라고 인터뷰하며 본인의 전과 기록은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티끌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 11월 29일, '매타버스' 일정으로 전라남도를 돌며 차별금지법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조선대학교에서 "차별금지법은 필요하다. 입법해야한다. 성별 할당제는 정의의 문제이며, 실제 할당제를 보면 청년 남성이 훨씬 혜택을 많이 보고 있다. 남성 비율 30%에 미달해서 30%를 남성이 할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뒤이어 동성애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며, 성적 취향으로 차별해선 안된다.",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논쟁과 의견 수렴을 거쳐 사회적 합의에 이를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 11월 30일, 인재영입 1호로 군사 및 우주 전문가인 조동연을 영입했다.
  • 12월 1일, 청년 인재영입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AI 맵을 개발한 김윤기(2001년생), 데이터 활용 혁신 기업 창업가 김윤이(1983년생), 인공지능 연구가 최예림(1986년생), 뇌공학 전문가 송민령(1984년생)을 영입했다.
  • 12월 3일, 전주를 찾아 "삼성이 기본소득 얘기하면 어떨까? 이재용에도 말해보겠다."며 삼성 그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기본 소득을 지지해주면 좋을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뒤이어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존경 의식을 표했다. 이후 존경한다고 했더니 진짜 존경한다는 줄 안다. 라고 하며 앞서 한 말을 부정했다.
  • 12월 4일, 전북 군산에서 "출신이 비천하고, 비천한 집안이라 주변을 뒤지면 더러운 게 많이 나온다. 제 출신이 비천한 건 제 잘못이 아니니까 저를 탓하지 말아달라"라고 호소했다.# 동시에 "나는 묵은 숙제 전문가다. 공공의대 최대한 빨리 시행하겠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 12월 5일 딥페이크 영상은 소지, 저장만 해도 무조건 강력히 처벌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 12월 6일, 대장동과 부산저축은행과 관련해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 측이 그랬지 않습니까?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 제가 그 말씀 그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특검을 거부하는 윤석열 후보가 범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점에 대해서 화천대유 비리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제한 없이 전면적인 특검을 우리 윤석열 후보께서 동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 12월 7일, 서울대 초청 금융경제세미나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였다.
  • 12월 11일, 인터넷 검열감시법 시행 사태에 대해 "사전검열이란 반발이 있나 본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자유 권리엔 한계가 있다."라고 밝혔다. 같은날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 "전두환이 삼저 호황을 잘 활용해서 경제가 망가지지 않도록 경제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 건 성과인게 맞다. 그러나 국민이 맡긴 총칼로 국민의 생명을 해친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할 수 없는, 결코 다시는 반복 돼서는 안될 중대범죄. 그래서 그는 결코 존경받을 수 없어." 라고 평가했다. 마무리로는 "여태까지 색이 똑같아서, 빨간색이라 찍었는데 솔직히 대구 경북 망하지 않았냐."라고 비평하였다.
  • 12월 16일, 아들에 대한 논란에 대해 "아들이 일정 기간 유혹에 빠졌던 모양이다. 부모로서 가르침이 부족함이 있었다. 아들도 자신이 한 행동을 크게 반성하고 있고 스스로 무척 괴로워한다."라고 아들의 모든 범죄 행위에 대해 사실임을 인정하며 사과하였다.
  • 12월 17일, 경선 과정에서 받은 후원금 25억 중 2억 3천여만원에 대해 반환 요청이 접수되어 민주당 경선 후보 중 압도적인 반환 요구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 보도되었다. 이는 2위인 이낙연 후보의 2.5배가 넘는 수치이며, 국민의힘은 홍준표 후보에게 1건의 반환 요청이 있었다는 것과 비교하며 크게 차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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