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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인문학 (Humanities)/4. 사회인문 (Social humanities)

[설날 명절] 설날의 유래, 어원, 떡국 먹는 이유, 까치 설날이 어제인 이유

by hlee100 2022.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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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명절] 설날의 유래, 어원, 떡국 먹는 이유, 까치 설날이 어제인 이유

 

[설날 명절] 설날의 유래, 어원, 떡국 먹는 이유, 까치 설날이 어제인 이유

 

1. 설날의 유래

 

설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중국에서 태양 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로 추정됩니다. 중국도 1월 1일인 새해 첫날보다 우리의 설날과 같은 음력 1월 1일을 아주 중요시하고 있는데요. 한국도 중화권 국가로써 이런 영향을 크게 받았겠지요. 그래서 적어도 6세기 이전, 역법(曆法)이 제정되고 태양력을 받아들인 이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래전부터 음력 1월 1일을 설날로 쇠던 전통은 일제시대에 음력이 아닌 양력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해방 이후에도 1980년대 중반까지 공휴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1985년부터 음력설은 '민족의 날'이라는 명칭을 붙여 처음으로 설날 하루만 공휴일로 제정됐었고, 1989년부터 민속의 날을 '설날'로 개칭하고 사흘간의 연휴로 정식 지정됐습니다.

 

[설날 명절] 설날의 유래, 어원, 떡국 먹는 이유, 까치 설날이 어제인 이유

 

 

 

2. 설날의 어원

 

음력 1월 1일인 설날은 한 해가 시작되는 첫날로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 중에 하나인데요. 설이라는 말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 먼저 설날은 '낯설다'의 어근인 '설'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는데요, '새해에 대한 낯섦'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아직은 적응되지 않은 새로운 해, 낯선 해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는답니다.

 

둘째, 시작이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선날'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연음화에 의해 '설날'로 되었다는 설입니다.

 

셋째, ‘삼가다’나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를 어원으로 갖는다는 설입니다. 새로운 시간, 사회, 환경의 질서 속에서 아직은 어색하여 언행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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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설날의 세시풍속

 

설날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 중에 하나로 그 세시 풍속도 무척 많았습니다.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등이 있었죠. 이 중에 생소하게 느끼실 청참은 설날 새벽에 처음 듣는 소리, 특히 동물의 울음소리로 1년 신수를 점치는 풍속이었다고 하고요.

 

'야광귀 쫓기'라는 것도 아마 처음 들어보셨을 텐데요. 야광이라는 귀신이 설날 밤에 사람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에서 시작됐습니다. 신발을 잃어버린 주인은 그 해 운수가 나쁘다고 여긴 우리 조상들은 신발을 모두 방안에 들여놓고,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 두거나 마당에 장대를 세우고 체를 달아매어뒀다고 합니다. 그러면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다가 순서를 잃어버려 또다시 세고... 그러다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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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설날에 떡국을 먹는 이유

 

설 날 아침에 떡국을 먹는 이유는 순백의 떡과 국물로 지난해 안 좋았던 일을 모두 잊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흰 가래떡을 길게 뽑아 장수와 자손의 번창을 빌고, 둥글게 써는 것은 옛날 화폐인 엽전 모양으로 운세와 재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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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까치까치 설날는 왜 어저께일까?

 

'까치는 동물이 아니다' 까치의 설날에 관해 여러 가지 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국어학계에서 가장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설은 무속·민속 연구 권위자였던 고(故) 서정범 교수의 주장입니다. 서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 섣달 그믐날은 '아찬 설' 또는 '아치 설'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아찬', '아치'는 순우리말로 '작은(小)'을 뜻하는 말인데요, 설 전날을 '작은 설'이라는 뜻으로 '아치 설'이라고 했다는 것이죠. 추석이 '한가위'라고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설은 '한설, 한첫날'로, 작은 설은 '아찬 설, 아치 설'로 불렸는데 세월이 흐르며 '아치'가 뜻을 상실하며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서 교수는 우리나라 남서해안 다도해 지방에서 '조금'을 부르는 말이 변한 것을 듭니다. 조금은 조석 간만의 차가 가장 작을 때를 말하는데요, 이 차이가 작을 때 뱃사람들은 이를 '아치 조금'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충남 태안반도와 황해도 옹진반도 사이에 있는 경기만 지역에서는 이 '아치 조금'을 '까치 조금'이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국립국어원은 '아치 설'이 '까치 설'로 이어지는 원형을 문헌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구어로 썼던 말이 변형됐다고 보면 '아치 설'의 개연성이 가장 높다고 말합니다.

 

■ 신라 소지왕의 목숨을 구한 까치 다음으로 많이 알려진 설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입니다. 고려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까치가 등장합니다.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작당을 해 왕을 없애려고 했는데, 까치와 쥐, 돼지와 용의 도움으로 왕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소지왕은 동물들의 공을 인정하여 십이지신(十二支神)에 모두 넣어줬지만, 까치를 넣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대신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이라 하여 까치설이 생겨났다는 설입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은 이 설화에 나오는 동물은 까치가 아니라 까마귀라면서, 까치설의 유래를 설명하는 글이 왜곡되어 퍼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밖에도 설은 다양합니다.

 

■ 일제강점기에 빼앗긴 우리말과 동요 윤극영 선생이 작사·작곡한 '설날'을 발표한 시기는 일제 강점기인 1924년이었습니다. 윤극영 선생은 일본에 우리말과 동요까지 빼앗긴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이 동요를 만든 것으로 전해집니다. 때문에 양력 1월 1일 '신정'을 설날로 쇠던 일제를 까치로 비유했고, 우리 민족의 설날인 음력 1월 1일보다 앞선 시점이기 때문에 '어저께'라고 말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왜 일본을 까치로 비유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은 상태입니다.

 

■ 설날과 까치는 무슨 관계일까? 서양에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길조(吉兆)의 상징 까치가 있죠. 우리 조상들은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믿었습니다. 까치는 실제로 시각과 후각이 사람보다 뛰어나 주위의 냄새는 물론 사람의 냄새까지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경계의 표시로 우는데, 우리 조상들은 먼 객지에 나간 자식과 같은 반가운 손님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설날엔 이처럼 온 가족과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기 때문에 까치가 설날 동요에 등장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은 것이죠. 이외에도 까치의 무늬와 비슷한 색동저고리를 설 전날에 준비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이번 설에는 아이들이 까치는 왜 설날이 어저께냐고 물어보면 우물쭈물하지 않고 재미있는 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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