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사람 문재인 과거, 결혼, 학력, 정치경력 등 일생 정리
1. 개요
문재인(文在寅, 1953년 1월 24일~)은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이다. (임기: 2017년 5월 10일~2022년 5월 9일) 정계 입문 이전에는 노무현과 함께 법무법인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고 대통령 당선 이전에는 참여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통령비서실장을 거쳐 제19대 대한민국 국회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했다.
본관이 남평(南平)인 그는 경희대학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 독재에 항거하다가 1975년 서대문구치소에 투옥됐고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출소 후에는 신체 검사도 받지 않은 상태로 군에 강제 징집되었다. 특전사로 군복무를 마친 후 복학해 다시 학생운동을 이끌며 전두환 군부 독재에 항거하다가 1980년 청량리구치소에 투옥됐으나, 조영식 경희대 총장의 신원보증하에 옥중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극적으로 석방되었다. 1982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학생운동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거부됐다고 알려졌으며,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운동을 할 때 새천년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부하다가 노사모를 중심으로 하나되어 극적으로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2003년에 참여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역임했다. 2004년, 자리에서 물러나 히말라야 산맥으로 트래킹을 떠났으나, 도중에 노무현의 탄핵 소추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하여 변호인단의 간사를 맡았다.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문재인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선출직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동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과 겨루어 전국 순회경선 13회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제18대 대선 후보로 확정되어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2015년 2월 8일에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 선출되었고, 2016년 1월까지 새로 개편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제20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다녔다.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 시기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조기 대선이 결정되자 대권에 재도전하였고, 이재명, 최성, 안희정과 겨루어 전체 표수의 과반을 얻어 결선투표 없이 2017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최종 승리하여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선 후보가 되었다.2017년 5월 9일 치러진 대선에서 41.1%를 득표하여 24%를 득표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으며, 대통령이 파면되어 치러진 궐위선거이기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당선인 결정 시간인 2017년 5월 10일 8시 9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고 바로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2. 과거
- 실향민의 아들문재인 대통령은 1953년 1월 24일 경남 거제의 시골 농가에서 실향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6.25 한국전쟁 당시 흥남에서 피난을 내려와 거제에 정착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그의 가족은 부산 영도로 이사하였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도 부산의 명문인 경남중학교와 경남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가 경남중학교에 합격했을 때, 평소 과묵했던 아버지께서는 자랑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않고 교복을 맞춰주겠다며 그를 국제시장에 데리고 가셨다고 한다. 가난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한 것이 많았지만, 그에게 가난은 오히려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다. 또 어릴 적 가난했던 기억은 그대로 인생의 교훈이 되어, 불우하고 어려운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돕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 격동의 청년기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부조리하고 불공정한사회에 대한 저항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중요한 시국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시위대열에 동참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3선 개헌 반대 시위에 참여하였다. 1972년 경희대 법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문재인 대통령은 1975년 유신독재 반대 시위를 이끌다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강제 징집되어 특전사령부에 입대하였다.
- 인권변호사1982년,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마쳤지만, 유신반대 시위 전력이 결격 사유가 되어 판사 임용에 탈락하였다. 대형 법률사무소에서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지만, ‘억울한 사람을 돕고 보람을 찾는 것’이 변호사의 소임이라고 생각한 그는 결국 이런 제안을 마다하고 부산으로 돌아가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그 때 처음 맺어졌다. 처음부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은 학생운동 사건과 노동운동 사건들이 많았다. 그는 탄압에 시달리다 못해 자신을 찾아온 노동자들을 피하지 않았고, 그들의 말에 진정으로 공감하면서 최선을 다해 이들을 변론했다. 당시 학생회 활동을 했던 많은 학생들은 ‘그 당시 문재인 변호사의 얼굴을 지겹도록 보았다’고 기억한다.
- 정치에 눈뜨기 시작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치적 관심을 일깨워준 최초의 스승은 바로 아버지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장삿길에서 돌아오실 때마다 책을 사다 주신 덕에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중・고등학교 6년간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길렀다. 집에 이웃집 대학생이 찾아오면 아버지께서 사회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곤 하셨는데, 그때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과 식견들이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분석적 태도를 기르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 참여정부2003년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인권변호사라는 말을 들으면서 권력을 비판하는 역할만 했을 뿐, 국정운영 경험이나 행정경험이 없었던 그였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의 설득 끝에 민정수석 자리를 받아들였다. 1년여 동안 청와대 생활을 마치고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네팔 히말라야를 여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접하고 곧장 귀국하여 탄핵대리인단 구성을 비롯하여 법적 대응 전반을 도맡았다. 탄핵재판 중에 있었던 탄핵반대 촛불시위 현장에도 참석하였다. 탄핵심판이 기각되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시민사회수석과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 대통령의 친구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2009년 5월, 갑작스러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상주가 되어 서거 발표부터 장례 준비를 위한 회의주재까지 도맡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친구였고, 동지였으며, 정계 입문을 결심하게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이후 제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범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하였다. 2015년부터 2016년 1월까지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과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로 활동했다. 2016년 11월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 앞장섰으며,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과 함께 촛불을 든 국민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이들과 시종일관 함께 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결정된 조기 대선에서 든든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하여 41.1%의 지지율로 제 19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유례없는 정치적 격변기를 겪은 대한민국을 위해 다시 일어선 그는 이번에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 그는 직책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보다 세상을 바꾸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대통령의 지위가 의미를 가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만약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세상을 바꾸는 것은 혼자 힘으로 할 수 없고 국민의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국민들과의 소통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위대한 대한민국, 정의로운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당당한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3. 결혼
김정숙 여사는 1974년 경희대 74학번으로 성악과에 입학했다. 그해 대학축제 때 친구 오빠에게 법학과에 다니던 72학번 문 대통령을 소개받았다. 그는 “알랭들롱 닮았다고 해서 나갔는데 아니어서 눈을 내리깔았다”며 문 대통령과 첫 만남을 회상했다. 축제 이후 마주칠 때마다 어색한 인사만 나누던 두 사람의 본격적인 인연은 이듬해인 1975년 유신반대시위 현장에서 시작됐다.
경희대 법대 4학년 때 총학생회 총무 부장이던 문 대통령이 민주화 시위에 앞장서다 최루탄을 맞아 실신했을 때 옆에 있던 김 여사가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문 대통령은 1975년 4월 11일 집회 때 구속돼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이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도 그의 곁을 지켰다. 그는 자신의 연애사를 ‘면회의 역사라고 말한다.
김 여사는 문 대통령 면회때 야구광이던 문 대통령을 위해 그의 모교 경남고 야구부의 우승 기사가 담긴 신문을 들고 갔다. 문 대통령은 “내가 아무리 야구를 좋아한들 구치소에 수감된 처지에 야구 소식에 무슨 관심이 있을까.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한 아내가 귀여웠다”고 회고했다.
7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자”고 먼저 말한 사람은 김 여사였다. 지난 4월 3일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문 후보와의 ‘59문59답’에서 문 후보는 “프로포즈는 어떻게 했나”는 질문에 “아내가 먼저 했다. 친구들과 있는데 아내가 와서 갑자기 ‘재인이 너 나랑 결혼 할거야 말거야? 빨리 말해!’라고해서 깜짝 놀라 ‘알았어’라고 했다”고 답했다.
김 여사가 문 대통령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자유롭게 해줄 것 같아 좋았다”고 했다. 경희대 성악과를 졸업 후 서울시립합창단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부산에서 법무법인을 개업한 남편을 내조하기 위해 전업주부가 됐다.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정숙 여사는 유복한 집안에서 3남2녀 중 둘째로 자랐다. 활발하고 밝은 성격으로 ‘유쾌한 정숙씨’란 별명을 갖고 있는 김정숙 여사는 문 대통령 정치인생에 가장 큰 조력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 대선 기간에도 김정숙 여사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남편에게 과감히 전달하며 선거운동을 도왔다.
4. 경력
- 2017.5 제 19대 대한민국 대통령
- 2015.12~2016.01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 2015.02~2015.12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 2012.05~2016.05 제 19대 국회의원
- 2011.12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2011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
- 2010.08~2012.04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 2009.09~2010.08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상임이사
- 2007.08 제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회 위원장
- 2007.03~2008.02 대통령비서실 실장
- 2005.01~2006.05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 2004.05~2005.01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 2003~2004.02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 2001~2003 부산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
- 2001~2002 노동자를 위한 연대 공동대표
- 1996 부산 YMCA 이사
- 1995~2001.02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 1995~2002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 1994 노동자를 위한 연대 노동상담소장
- 1989~2002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 부이사장
- 1988 한겨레신문 창간위원
- 1985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 1984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법학과 강사
- 1980제 22회 사법시험 합격
5. 학력
- 1980 경희대학교 법학과 졸업
- ~1971 경남고등학교 졸업
- ~1968 경남중학교 졸업
- ~1965 남항초등학교 졸업
'I. 인문학 (Humanities) > 3. 인물, 단체 연구 (Research on people, group)'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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