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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국제사회학/1. 국제정치시사 (International Politics)

[시사]우크라이나 위기, 러시아와의 관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갈등의 이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2.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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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몇 달 동안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10만 병력을 배치했고, 이는 전 세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번 위기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 정책을 등에 업고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려는 움직임과, 이를 막고 우크라이나를 자국 영향력 아래 두려는 러시아의 갈등 때문이다. '돈바스 지역'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도 갈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2014년 3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에 있는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한 달 후,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돈바스 지역의 일부를 점령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은 분리주의자들이 러시아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분리주의자들에 맞서 싸웠고, 이로 인해 수천 명의 사상자도 나왔다. 2015년 휴전 협정 이후로도 충돌은 진행 중이다. 이 갈등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의 안정을 비롯해 러시아-유럽-미국의 관계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사]우크라이나 위기, 러시아와의 관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갈등의 이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지정학적,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러시아의 뿌리와도 같은 지역이다. 러시아의 기원은 키예프 공국인데, 키예프가 1240년 몽골제국의 침입으로 쑥대밭이 되자 주민들이 동북부로 이주해 건설한 곳이 모스크바이고, 이렇게 세운 모스크바 공국은 러시아 제국의 기초가 되었다.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해서 우크라이나의 남쪽 크림반도에는 러시아 흑해함대의 기지가 있고,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는 러시아 가스관은 우크라이나를 통과한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유럽으로 향하기 위한 관문이고, 역사적, 문화적으로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지역인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했지만 서쪽 지역은 우크라이나어를 쓰며 친서방 성향을 보이고 동남 지역은 러시아어를 쓰고 친러 성향을 보이며 대립해왔다. 동남 지역에서는 러시아로의 편입을 원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친러 성향의 정권에 맞서 2014년 이른바 '오렌지 혁명'으로 불리는 강력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친러 성향 대통령이 물러났다. 이때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크림 자치공화국을 전격 합병했다. 크림반도의 경우 70% 가까운 주민이 러시아계다. 우크라이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2019년 집권한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헌법에 명시했다. 러시아에 맞서 나토의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나토군이 우크라이나 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될까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즉 '나토의 동진'으로 표현되는 서방세력의 확장에 따른 안보 위기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한 셈이다.

 

[시사]우크라이나 위기, 러시아와의 관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갈등의 이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뜻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접경지에 군 병력 배치를 늘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2일 62분간 전화 통화로 담판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해법을 도출하진 못했다. 회담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유럽의 동맹들과 단호히 대응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당국자는 언론 브리핑에서 "몇 주간 전개된 상황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다"고 말한 것으로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크렘린궁 외교담당 보좌관은 "두 정상은 통화에서 논의한 모든 사안에 대해 접촉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서방 언론들은 날짜까지 꼭 짚어 '16일 침공설'을 전하고 있다. 곳곳에서 군사적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러시아는 쿠릴열도 인근 러시아 영해에서 버지니아급 미국 핵 추진 잠수함을 탐지해 쫓아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미군 잠수함은 공해에서 안전하게 항해하고 있다"며 러시아 측 주장을 일축했다. 

 

[시사]우크라이나 위기, 러시아와의 관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갈등의 이유



나토와 러시아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서독과 미국이 당시 중요한 약속을 한다. 통일된 독일의 경계선 밖 동쪽 방향으로는 나토의 영향력을 확장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서독과 미국의 이런 약속은 동독에 주둔하던 소련군이 철수할 수 있는 명분이 됐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이 때, 동독에서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본 젊은 소련 KGB 요원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지금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다. 

그런데 나토는 이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소련 붕괴 8년 뒤인 1999년,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이 속속 나토에 가입한다.

2004년에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등 과거 소련의 편에서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입했던 나라들이 대거 나토로 넘어오게 된다. 

당초 약속과는 달리 러시아 방향으로 '나토의 동진'이 계속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2000년대 중반부터는 우크라이나까지 나토 가입을 추진하고 나섰고, 러시아는 군사 행동에 나선다. 

2008년 조지아를 침공했고, 이어 2014년 3월엔 우크라이나에 붙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했다. 

나토는 이런 군사 행동은 '러시아가 먼저 약속을 깬 것'이라고 판단하고 2016년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등 발트 3국과 폴란드·루마니아·불가리아에 나토군을 배치했고 이러면서 겨우 유지해왔던 서방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파탄이 나다시피 했다. 

 

[시사]우크라이나 위기, 러시아와의 관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갈등의 이유

 

러시아의 최대 방어 수단은 넓은 영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의 광활한 국토는 역사적으로 모스크바를 지켜줬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정복, 히틀러의 침공이 모두 혹독한 날씨 속에 광활한 영토를 진군했다가 실패했다. 

옛 소련 시절 모스크바와 나토의 영향권 사이엔 1800㎞ 정도의 거리가 확보됐는데, 만약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이 거리는 500㎞로 줄어들고, 러시아는 나토 회원국과 국경을 맞대는 결코 참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되는 것이다. 

이렇게 민감함 사안이기 때문에 나토는 유사시 우크라이나에 개입할 수 있다고는 하면서도 다른 옛 동구권 국가들과는 달리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유보하고 있다. 

나토에 가입시켜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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