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 인문학 (Humanities)/3. 인물, 단체 연구 (Research on people, group)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생, 대통령 된 과정, 대담한 희망 연설 총정리

by hlee100 2022. 2. 1.
반응형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생, 대통령 된 과정, 대담한 희망 연설 총정리

 

 

 

1. 버락 H. 오바마는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이다.

 

미국 중심부의 가치, 강인한 가정에서의 중산층 가정교육, 노력과 교육을 수단으로 한 사회적 성공, 그토록 축복받은 삶에는 타인에 대한 봉사가 함께해야 한다는 신념이 녹아든 그의 스토리는 바로 미국의 스토리다. 오바마 대통령은 1961년 8월 4일에 하와이에서 케냐 태생의 아버지와 캔자스 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패튼 장군 휘하에서 복무했던 할아버지와 은행 비서직으로 출발해 중간 관리직까지 올랐던 할머니의 도움으로 성장했다.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을 받아가며 대학을 졸업한 그는 시카고로 이주해 교회 단체와 함께 철강공장 폐쇄로 타격을 입은 지역사회 재건에 힘썼다.

 

오바마는 그 후 로스쿨에 진학해 흑인 최초로 하버드 로스쿨에서 발행하는 ‘하버드 로 리뷰’의 편집장이 됐다. 졸업 후에는 시카고로 돌아와 유권자 등록 캠페인을 주도했으며, 시카고대에서 헌법을 강의하면서 활발한 지역사회 활동을 이어갔다. 공직에 진출한 후에는 목적이 있는 정치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결속시킬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에 따라 움직였다. 일리노이 주 상원에서 그는 25년 만에 처음으로 대대적인 윤리 개혁안을 통과시키고 서민층의 세금을 인하하는 한편, 아동과 그 부모들을 대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확대했다. 연방 상원의원 시절에는 초당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획기적인 로비 개혁안을 통과시키고 전 세계의 가장 위험한 무기들의 통제를 꾀했으며, 연방 정부 지출을 인터넷에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정부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11월 4일에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2009년 1월 20일에 취임했다. 아내 미셸과의 사이에 말리아(14세)와 사샤(11세) 두 자매를 두고 있다.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생, 대통령 된 과정, 대담한 희망 연설 총정리

 

 

2. 미국 44대 오바마 전대통령, 8가지 순간


1.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 Yes, We can!

 

2009년 1월18일 미국 워싱턴의 링컨기념박물관에서 열린 취임식 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제44대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퍼스트 레이디 미셸 오바마가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만 47살. 2009년 1월, 미국 역대 5번째 최연소로 대통령에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의 나이입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유력한 대선 주자로 거론됐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꺾으며 돌풍을 일으킨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에서 365명의 선거인단을 얻으며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워싱턴 의사당에서 진행된 취임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언급하며 “우리의 서로 다른 꿈은, 사실은 하나라는 킹의 교훈을 기억하자”고 말하며 화합을 강조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던진 화두는 바로 ‘희망’과 ‘변화’였습니다. 21세기를 9·11 테러의 충격으로 시작했고, 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 연이은 전쟁과 2008년 금융위기로 지쳐있던 미국인들에게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은 그 자체로 ‘희망’과 ‘변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2. 오바마 케어 - 개혁일까, 재앙일까

2010년 3월21일 미국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백악관 관계자들이 건강보험개혁법안이 미국 하원을 통과하는 모습을 화면을 통해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다.

 

2010년 3월23일, 건강보험개혁법안에 서명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사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이후 가장 역점을 둔 정책은 바로 ‘오바마 케어’라고 불리는 건강보험개혁법 시행입니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고, 이를 통해 보험 가입을 유도한다는 것이 뼈대입니다. 공화당의 거센 반대와 민간 보험사의 로비 등 우여곡절을 겪은 오바마 케어는 2010년 3월21일, 미국 하원에서 찬성 219표 대 반대 212표로 통과됐고, 이틀 뒤 오바마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며 본격적으로 시행됐습니다.

 

‘오바마 케어’는 1965년 도입된 노인 대상 건강보험인 ‘메디케어’ 이후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의료보험제도 개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고가의 민간 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의료보험 제도가 바로 오바마 케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연간 7%에 가까웠던 의료비 증가율은 오바마 케어가 시행된 2010년 이래로 4% 수준에 머무는 등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3. ‘넵튠의 창’ 작전 - 대통령은 간이 의자에

 

 

2011년 5월1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부통령, 버락 오바마(왼쪽에서 두번째)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오른쪽에서 두번째) 국무장관이 국가안보팀 관계자들과 함께 오사마 빈라덴 암살 작전 생중계 화면을 보고 있다

 

2011년 5월1일, 미국은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인 ‘넵튠의 창’을 시행합니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주도하고, 미 해군의 대테러 특수부대인 네이비실이 수행한 이 작전은 대원들의 헬멧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직접 백악관으로 생중계됐습니다. 오사마 빈라덴의 암호명은 ‘제로니모’ 였습니다.

 

넵튠의 창 작전 며칠 뒤, 당시 백악관 상황실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상황실의 가운데 자리가 아니라 구석에 놓인 접이식 의자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작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가장 가운데에 놓인 ‘대통령용’ 의자에는 마셜 웹 합동특수전사령부 부사령관이 앉아 지시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사진은 실무자에게 가장 중요한 권한을 부여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의 사살 작전은 이듬해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동시에 무장하지 않은 오사마 빈라덴을 현장에서 즉각 사살한 것은 국제법을 위반한 행위라는 비판도 일었습니다. 오사마 빈라덴의 암호명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인 아파치족 추장이자 이름한 전사였던 ‘제로니모’를 사용한 것도 아메리카 원주민의 반발을 샀습니다.

 

 

 

4. 이란 핵협상 - ‘핵무기 없는 세상’의 정점

 

2013년 11월23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존 케리 국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통해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을 전달받자, 벤 롭즈(왼쪽)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과 토니 블링큰(오른쪽)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주먹을 쥐고 환호하고 있다.

 

 

2013년 11월24일 새벽(현지시각), 이란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P5+1)의 핵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습니다. 이란은 핵 활동을 축소·동결하고, 미국을 비롯한 ‘P5+1’ 국가들은 이란의 핵 활동과 관련해 신규 제재조처를 부과하지 않는 동시에 기존의 제재 일부를 해제하는 것이 뼈대였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핵 협상 타결 직후 방송 연설을 통해 “10년만에 처음으로 이란 핵 프로그램의 진전을 중단할 수 있는 가시적인 외교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습니다. ‘이란 핵 협상’은 적국의 현실을 인정하고, 외교적 협상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는 2기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전략을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9년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선언하는 등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미국의 핵무기 현대화에 대규모 예산을 쏟아붓는 등 모순된 행보를 보였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생, 대통령 된 과정, 대담한 희망 연설 총정리

 

 

5. “어메이징 그레이스” 노래로 위로한 대통령

2015년 6월17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자리한 한 감리교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를 포함해 9명의 신도들이 숨졌습니다. 사고 열흘 뒤인 26일, 찰스턴에서 열린 핑크니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은 추모사 도중 갑자기 찬송가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고, 오르간은 반주를 시작했으며, 이내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합창했습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영국 성공회 존 뉴턴 신부가 흑인 노예무역에 관여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죄를 사해준 신의 은총에 감사한다는 내용의 찬송가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핑크니 목사가 그 은총을 발견했다”고 말한데 이어 다른 희생자들의 이름도 차례로 부르며 유족을 위로했습니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 일간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외신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이 장면이 그의 대통령 재직 기간 중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6. 총기 규제 기자회견, 그리고 대통령의 눈물

“(희생된) 아이들을 생각하는 모든 순간마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습니다.”

총기 거래 규제를 강화하는 행정명령이 발표된 2016년 1월5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사고로 숨진 희생자들을 언급하다 결국 눈물을 보였습니다.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한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공화당을 겨냥해 “우리 모두는 의회가 총기 단체의 거짓 로비에 맞설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야 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2011년 21명의 사상자를 낳은 애리조나 총기 난사를 시작으로,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2014년 산타바바라 총기 난사,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교회·샌버나디노 총기 난사, 2016년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댈러스 저격 사건 등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도중엔 유난히 충격적인 총기 사고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비슷한 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 사용에 대한 더욱 엄격한 규제를 촉구했지만, 전미총기협회(NRA)를 비롯한 총기 관련 이익단체들의 막대한 로비로 인해 총기 규제는 여전히 난망합니다.

 

 

 

 

6. 오바마와 아이들 - ‘케미라는 것이 폭발한다!’

2009년 5월8일 백악관 직원인 칼튼 필라델피아의 아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머리를 만져보고 있다

 

“저도 비슷한 머리 모양인데요. 혹시 같은 느낌이 나는지 한 번 만져봐도 되나요?”

아이의 말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이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대통령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이의 모습은 그대로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지난 2009년 백악관 수석 사진가인 피트 수자가 찍은 이 사진이 공개되자, 누리꾼들은 어린 아이의 귀여운 요청에 응대해준 오바마 대통령의 친근한 모습에 환호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아이들의 모습

 

2009년 12월3일 백악관의 행정동 건물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청소노동자와 주먹을 맞대며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케미’는 비단 아이들과 찍은 사진에서만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09년 백악관 행정동 건물의 복도를 지나던 중 청소노동자와 스스럼없이 주먹을 맞대며 인사를 나누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도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7.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 앞으로는?

2016년 3월21일 라울 카스트로(오른쪽)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수도 아바나 혁명궁전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그의 왼팔을 들어 올리고 있다. 카스트로 의장은 악수 뒤 우의를 내비치려는 듯 함께 팔을 들어 보이려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힘을 빼면서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다

2015년 7월20일, 미국 수도 워싱턴에 위치한 쿠바 대사관에 54년만에 처음으로 쿠바 국기가 나부꼈습니다. 미국과 쿠바는 이날 상대국 수도에 있던 기존의 이익대표부를 대사관으로 승격시키면서 1961년 이후 처음으로 국교를 정상화했습니다. 미국은 이후 민항기와 크루즈선의 쿠바 운항을 재개하고, 금수 조처도 부분 해제하는 등의 조처를 취했습니다.

이듬해 3월, 오바마 대통령은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88년만에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쿠바를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의 옛 시가지를 관광하고,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정상회담을 여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생, 대통령 된 과정, 대담한 희망 연설 총정리

 

 

 

 

3. 오바마를 스타로 만들어준 연설, Audacity of Hope! (담대한 희망)

 

 

당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주 상원의원을 8년 지냈지만, 전국적으로는 무명에 가까웠던 그가 2004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오른 이 연설을 계기로 유명해지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cAG0ep9QDNw)

 

Thank you so much.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 so much. Thank you so much. Thank you. Thank you. Thank you, Dick Durbin. You make us all proud.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On behalf of the great state of Illinois, crossroads of a nation, Land of Lincoln, let me express my deepest gratitude for the privilege of addressing this convention.

미국 교통의 요충지이자 링컨을 배출한 일리노이주를 대표하여 이 대회에서 연설을 하게 되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Tonight is a particular honor for me because, let’s face it, my presence on this stage is pretty unlikely. My father was a foreign student, born and raised in a small village in Kenya. He grew up herding goats, went to school in a tin-roof shack. His father -- my grandfather -- was a cook, a domestic servant to the British.

오늘 밤은 제게 특별한 영광의 자리입니다. 솔직히 제가 이 자리에 선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아버지는 케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유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염소를 치며 컷고, 양철 지붕으로 된 판잣집 학교를 다녔습니다. 할아버지는 영국인 가정의 조리사이자 하인으로 일했습니다.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생, 대통령 된 과정, 대담한 희망 연설 총정리

 

 

But my grandfather had larger dreams for his son. Through hard work and perseverance my father got a scholarship to study in a magical place, America, that shone as a beacon of freedom and opportunity to so many who had come before.

그러나, 할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큰 꿈을 품었습니다. 불굴의 인내심으로 열심히 공부한 아버지는 자유와 기회의 상징인, 마법의 땅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While studying here, my father met my mother. She was born in a town on the other side of the world, in Kansas. Her father worked on oil rigs and farms through most of the Depression. The day after Pearl Harbor my grandfather signed up for duty; joined Patton’s army, marched across Europe. Back home, my grandmother raised a baby and went to work on a bomber assembly line. After the war, they studied on the G.I. Bill, bought a house through F.H.A., and later moved west all the way to Hawaii in search of opportunity.

이곳에서 공부하는 동안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고향에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캔자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외할아버지는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내내 유정 굴착현장과 농장에서 일했습니다. 진주만 공격 다음 날, 외할아버지는 자진 입대하여 패튼 장군 휘하에 들어가 유럽에 투입되었습니다. 미국에 남아 있던 외할머니는 아기를 키우며 폭격기 조립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종전 후 그들은 '제대군인원호법(GI Bill of Rights ; 1944년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을 위한 미군의 권리에 관한 법)'의 지원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었고, 연방주택관리국(F.H.A ; Federl Housing Administrstion)을 통해 집을 장만하고, 기회를 찾아서 하와이까지 진출했습니다.

 

And they, too, had big dreams for their daughter. A common dream, born of two continents.

그들 역시, 딸을 위해 더 큰 꿈, 아메리카와 유럽 두 대륙에서 함께 키운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My parents shared not only an improbable love, they shared an abiding faith in the possibilities of this nation. They would give me an African name, Barack, or ”blessed,” believing that in a tolerant America your name is no barrier to success. They imagined -- They imagined me going to the best schools in the land, even though they weren’t rich, because in a generous America you don’t have to be rich to achieve your potential.

부모님께서 함께 나눈 것은 보기 드문 인연으로 맺은 사랑만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은 이 나라의 가능성에 대한 변함없는 신념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게 버락(BARACK), 즉 '축복받은 자'라는 뜻의 아프리카 이름을 지어 주면서도 관용이 넘치는 미국 땅에서 제 이름이 성공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리라고 믿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혀 부유하지 않았으면서도 제가 이 땅에서 최고의 학교에 갈 수 있으리라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관대한 미국에서라면 돈이 많지 않아도 자기 능력을 맘껏 발휘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They're both passed away now. And yet, I know that on this night they look down on me with great pride.

지금은 두 분 모두 돌아가셨지만, 오늘 밤 저를 내려다보며 긍지를 가지시리라 믿습니다.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생, 대통령 된 과정, 대담한 희망 연설 총정리

 

 

They stand here -- And I stand here today, grateful for the diversity of my heritage, aware that my parents’ dreams live on in my two precious daughters. I stand here knowing that my story is part of the larger American story, that I owe a debt to all of those who came before me, and that, in no other country on earth, is my story even possible.

그리고 제가 물려받은 이러한 다양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 밤 이 자리에 선 저는, 부모님의 꿈이 제 소중한 두 딸에게로 계속 이어져 나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제 삶의 이력이 미국 전체의 역사 중 일부이며,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저보다 먼저 이 땅에 온 모든 이들의 덕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상 다른 어떤 나라에서는 제 삶의 이력이 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습니다.

 

Tonight, we gather to affirm the greatness of our Nation -- not because of the height of our skyscrapers, or the power of our military, or the size of our economy. Our pride is based on a very simple premise, summed up in a declaration made over two hundred years ago:

오늘 밤 우리는 미국의 위대함을 확인하러 이 자리에 모였지만, 그것은 초고층 빌딩이나 군사력, 경제 규모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부심은 200년 전의 미국독립 선언서에 요약돼 있는 매우간단한 전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i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자명한 진리들을 간직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에 의해 몇 가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중에는 생명과 자유, 행복의 추구가 있다."

 

That is the true genius of America, a faith -- a faith in simple dreams, an insistence on small miracles; that we can tuck in our children at night and know that they are fed and clothed and safe from harm; that we can say what we think, write what we think, without hearing a sudden knock on the door; that we can have an idea and start our own business without paying a bribe; that we can participate in the political process without fear of retribution, and that our votes will be counted -- at least most of the time.

믿음-- 최소한, 밤에 아이들을  재울 수 있으며,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 아무런 위협없이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생각하는 바를 쓸 수 있는것.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뇌물을 쓰지 않고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것. 보복의 두려움 없이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우리의 투표가 쓸모 있다는 것 등등의  단순한 바람(꿈)들에 대한 믿음, 신념, 작은 기적들에 대한 역설(力說)이야말로 진정한 미국의 능력입니다.

 

This year, in this election we are called to reaffirm our values and our commitments, to hold them against a hard reality and see how we're measuring up to the legacy of our forbearers and the promise of future generations.

올해의 선거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치들과 공약을 다시금 확인하고, 냉엄한 현실에 맞서 그것을 지켜내고, 선조들이 남긴 유산과 미래 세대의 희망에 어떻게 적응시킬 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생, 대통령 된 과정, 대담한 희망 연설 총정리

 

And fellow Americans, Democrats, Republicans, Independents, I say to you tonight: We have more work to do --  more work to do for the workers I met in Galesburg, Illinois, who are losing their union jobs at the Maytag plant that’s moving to Mexico, and now are having to compete with their own children for jobs that pay seven bucks an hour; more to do for the father that I met who was losing his job and choking back the tears, wondering how he would pay 4500 dollars a month for the drugs his son needs without the health benefits that he counted on; more to do for the young woman in East St. Louis, and thousands more like her, who has the grades, has the drive, has the will, but doesn’t have the money to go to college.

저는 오늘밤 미국인들, 민주당, 공화당, 무소속  여러분들에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할 일이 많습니다. 제가 일리노이주 게일즈버그에서 만난 노동자들, 메이택(Maytag)공장이 멕시코로 이전하는 바람에 일터를 잃고,  이제 시간당 7 달러짜리 일자리를 놓고 자기 자식과 경쟁해야 하는 그들을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제가 만난 한 아버지, 일자리를 잃고서 건강보험 없이 한 달에 4,500 달러나 하는 아들 약값을 어떻게 감당할 지 몰라 걱정하며 복받친 슬픔을 참던 그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이스트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난 젊은 여성, 성적도 우수하고, 운전도 할 수 있고, 의지도 있지만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못 가는 그녀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Now, don’t get me wrong. The people I meet -- in small towns and big cities, in diners and office parks -- they don’t expect government to solve all their problems. They know they have to work hard to get ahead,  and they want to. Go into the collar counties around Chicago, and people will tell you they don’t want their tax money wasted, by a welfare agency or by the Pentagon. Go in -- Go into any inner city neighborhood, and folks will tell you that government alone can’t teach our kids to learn; they know that parents have to teach, that children can’t achieve unless we raise their expectations and turn off the television sets and eradicate the slander that says a black youth with a book is acting white. They know those things.

자, 제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소도시와 대도시에서, 식당과 복합상업지구(빌딩가)에서 만난 그 사람들은 정부가 그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더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시카고 주위의 칼러 카운티(시카고 도심에 해당하는 쿡(Cook) 카운티를 둘러싸고 있는 다섯 개의 카운티-60년대에서 70년대부터 도시계획이나 공공정책용, 언론보도 등에서 폭넓게 사용해왔던 용어-듀페이지(DuPage) 카운티, 케인(Kane) 카운티, 레이크(Lake ) 카운티, 맥헨리(McHenry) 카운티, 윌(Will) 카운티) 지역에 가 보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이 공공복지기관이나 국방부에 의해 낭비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람들은 정부 혼자서는 결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부모들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아이들의 기대치를 높여 주어야 하고, 텔레비전을 보지 않게 하고, 책을 들고 다니는 흑인 아이들에게 백인 흉내낸다고 비아냥 대지 말아야 그 아이들이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People don’t expect -- People don't expect government to solve all their problems. But they sense, deep in their bones, that with just a slight change in priorities, we can make sure that every child in America has a decent shot at life, and that the doors of opportunity remain open to all.

국민들은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책의 우선순위에 약간의 변화만 주어도 미국의 모든 어린이들이 품격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하며, 기회의 문이 모두에게 열릴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느낍니다.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생, 대통령 된 과정, 대담한 희망 연설 총정리

 

They know we can do better. And they want that choice.

그들은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선택을 원합니다.

 

In this election, we offer that choice. Our Party has chosen a man to lead us who embodies the best this country has to offer. And that man is John Kerry.

우리는 이번 선거에서 그런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 당이 선택한 그 사람은 우리를 이끌고, 이 나라가 제공한 최량(最良)의 것들을 구현시켜야 합니다. 그 사람은 존 케리 후보입니다.

 

John Kerry understands the ideals of community, faith, and service because they’ve defined his life. From his heroic service to Vietnam, to his years as a prosecutor and lieutenant governor, through two decades in the United States Senate, he's devoted himself to this country. Again and again, we’ve seen him make tough choices when easier ones were available.

존 케리 후보는 그의 생애에서도 엿볼 수 있듯 공동체의 신념, 이상, 봉사를 압니다. 베트남 전쟁에서의 영웅적 활약, 다년간의 검찰관 및 부지사로서, 20여년에 걸친 연방상원의원으로서 미국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쉬운 길 보다는 어려운 선택을 하며 살아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His values and his record affirm what is best in us. John Kerry believes in an America where hard work is rewarded; so instead of offering tax breaks to companies shipping jobs overseas, he offers them to companies creating jobs here at home.

그의 가치관과 자질은 최고임을 확언할 수 있습니다. 케리 후보는 미국이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보상받는 나라임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에 일터를 제공하는 회사들에게 세금을 감면해주지 않고 국내에 일터를 만드는 회사를 지원합니다.

 

John Kerry believes in an America where all Americans can afford the same health coverage our politicians in Washington have for themselves.

케리 후보는,  모든 미국인들이 워싱턴의 정치인들과 동일한 의료보장을 받을 수 있는 국가라고 믿고 있습니다.

 

John Kerry believes in energy independence, so we aren’t held hostage to the profits of oil companies, or the sabotage of foreign oil fields.

케리 후보는, 산유국의 방해 행위나 원유회사의 이익에 인질로 잡히지 않는 자립적인 에너지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John Kerry believes in the Constitutional freedoms that have made our country the envy of the world, and he will never sacrifice our basic liberties, nor use faith as a wedge to divide us.

케리 후보는, 헌법에 보장된 자유가, 미국을 세계에서 부러워하는 국가로 만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희생시키지 않고, 우리를 분열시키는 수단으로 신앙을 이용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And John Kerry believes that in a dangerous world war must be an option sometimes, but it should never be the first option.

케리 후보는, 위험한 세계정세에서 전쟁은  때대로 몇가지 선택옵션 중 하나이긴 하지만, 결코 첫번째 옵션으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You know, a while back -- awhile back I met a young man named Shamus in a V.F.W. Hall in East Moline, Illinois. He was a good-looking kid -- six two, six three, clear eyed, with an easy smile. He told me he’d joined the Marines and was heading to Iraq the following week. And as I listened to him explain why he’d enlisted, the absolute faith he had in our country and its leaders, his devotion to duty and service, I thought this young man was all that any of us might ever hope for in a child.

얼마 전, 저는 일리노이주 이스트 몰린의 해외참전용사회(V.F.W ; Veterans of Foreign Wars)에서 쉐이머스라는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는 큰 키에, 맑은 눈과 온화한  미소를 가진 잘생긴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해병대에 입대했으며, 다음 주에 이라크로 떠난다고 했습니다. 그가 입대한 이유, 우리나라와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에 대한 전적인 믿음, 봉사와 의무에 대한 헌신 등을 듣고 있자니, 이 젊은이는 우리들이 자녀들에게 바라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ut then I asked myself, "Are we serving Shamus as well as he is serving us?"

그리고 자문해봤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헌신하는 많큼 우리는 쉐이머스에게 헌신하고 있는가?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생, 대통령 된 과정, 대담한 희망 연설 총정리

 

I thought of the 900 men and women -- sons and daughters, husbands and wives, friends and neighbors, who won’t be returning to their own hometowns. I thought of the families I’ve met who were struggling to get by without a loved one’s full income, or whose loved ones had returned with a limb missing or nerves shattered, but still lacked long-term health benefits because they were Reservists.

저는 누군가의 아들딸들이거나, 남편들과 아내들이거나, 친구들과 이웃들일 수 있는- (전사해서)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할 900명의 남녀들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전사하고 별 수입없이 힘겹게 살아가는 가족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이 팔다리를 잃거나 정신착란에 걸려 돌아왔지만 예비역이라는 이유로 장기간 의료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When we send our young men and women into harm’s way, we have a solemn obligation not to fudge the numbers or shade the truth about why they’re going, to care for their families while they’re gone, to tend to the soldiers upon their return, and to never ever go to war without enough troops to win the war, secure the peace, and earn the respect of the world.

젊은 남녀들을 그런 전쟁에 보낼 때에는 우리는 중요한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전사자수를 속이거나 파병이유에 대한 사실을 은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전쟁터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은 그들의 가족을 돌 봐 주어야 하며, 그들이 돌아오면 보살펴야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평화를 확보할 수 있도록, 세계에서 존경받을 있도록, 충분한 병사를 확보하지 않고서는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Now -- Now let me be clear. Let me be clear. We have real enemies in the world. These enemies must be found. They must be pursued. And they must be defeated. John Kerry knows this. And just as Lieutenant Kerry did not hesitate to risk his life to protect the men who served with him in Vietnam, President Kerry will not hesitate one moment to use our military might to keep America safe and secure.

지금-- 이제 확실히 해 두겠습니다.분명히  말하겠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싸워야 할 적이 있습니다. 적을 찾아내야 합니다.  적을  추적해서 제압해야 합니다.   존 케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케리는, 베트남전쟁에서 해군대위로서 부하를 지키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케리 대통령은 미국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복무하는 군대로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John Kerry believes in America. And he knows that it’s not enough for just some of us to prosper -- for alongside our famous individualism, there’s another ingredient in the American saga,  a belief that we’re all connected as one people. If there is a child on the south side of Chicago who can’t read, that matters to me, even if it’s not my child. If there is a senior citizen somewhere who can’t pay for their prescription drugs, and having to choose between medicine and the rent, that makes my life poorer, even if it’s not my grandparent. If there’s an Arab American family being rounded up without benefit of an attorney or due process, that threatens my civil liberties.

케리 후보는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부만이 번영해서는 불충분하다는 것. 미국은 개인주의로 유명하지만, 미국의 역사속에는 별도의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국민으로 묶여 있다는 믿음이 그것입니다. 시카고 남부에는 문맹인 아이가 있다면, 비록 제 아이가 아니더라도 제 문제입니다. 처방전을 살 수 없는 고령의 시민, 약값이나 집세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고령의 시민이 어디엔가 계시다면, 그분들이 비록 제 조부모님이 아닐지라도 제 생활은 빈곤하게 됩니다. 어느 아랍계 미국인이 변호사를 선임 못해서 검거된다면, 그것은 저의 시민의 자유가 위협받는 것입니다.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생, 대통령 된 과정, 대담한 희망 연설 총정리

 

 

It is that fundamental belief -- It is that fundamental belief: I am my brother’s keeper. I am my sister’s keeper that makes this country work. It’s what allows us to pursue our individual dreams and yet still come together as one American family.

그 기본적인 믿음, --  내가 형제자매를 지킨다는 믿음은 이 나라를 움직이게(기능하게) 합니다. 우리에게는 개인의 꿈을 추구하면서도 하나의 미국의 가족으로 결집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습니다.

 

E pluribus unum: "Out of many, one."

다수로부터 하나를 이룹니다. (미국 국새에 새겨진, 미국의 국가이념이 담긴 표어)

 

Now even as we speak, there are those who are preparing to divide us -- the spin masters, the negative ad peddlers who embrace the politics of "anything goes." Well, I say to them tonight, there is not a liberal America and a conservative America -- there i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There is not a Black America and a White America and Latino America and Asian America -- there’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지금 우리가 대화하고 있는 사이에도 우리들을 갈라 놓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날조 전문가들이나 흑색비방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정치에 매몰된 사람들입니다. 오늘밤 그들에게 말하겠습니다. 이 나라는 자유주의자들의 미국도 보수주의자들의 미국도 아니고 아메리카합중국만 있을 뿐입니다. 흑인의 미국도, 백인의 미국도, 라틴계인의 미국이 아니라 아메리카합중국일 뿐입니다.

 

The pundits, the pundits like to slice-and-dice our country into Red States and Blue States; Red States for Republicans, Blue States for Democrats. But I’ve got news for them, too. We worship an "awesome God" in the Blue States, and we don’t like federal agents poking around in our libraries in the Red States. We coach Little League in the Blue States and yes, we’ve got some gay friends in the Red States. There are patriots who opposed the war in Iraq and there are patriots who supported the war in Iraq. We are one people, all of us pledging allegiance to the stars and stripes, all of us defending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지식인들은 우리나라를 적색 주와 청색 주로 나눠서 적색 주는 공화당, 청색 주는 민주당으로 구분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전해 줄 말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청색 주에서도 놀라우신 하나님(신)을 믿고, 연방요원이 적색 주의 도서관에서 (용의자를 찾기위해) 뒤지고 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청색 주에서 리틀리그(초등부·중등부(13~15세)·고등부(16~18세)로 구분한다, 초등부 경기는 프로 야구장의 2/3 크기의 운동장에서 6회로 진행된다. 1팀은 9명으로 구성되며 그중 2명은 반드시 11세 이하이어야 하며, 12세인 선수는 7명을 넘지 못한다.)를 지도하며, 적색 주에서는 동성연애자와 친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 애국자도 있고 지지하는 애국자도 있습니다만, 우리 모두  성조기 앞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우리 모두 미합중국을 지키고 있습니다.

 

In the end -- In the end -- In the end, that’s what this election is about. Do we participate in a politics of cynicism or do we participate in a politics of hope?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냉소주의 정치에 참여하는 건가요, 아니면 희망있는 정치에 참여하는 건가요.?

 

John Kerry calls on us to hope. John Edwards calls on us to hope.

케리 대통령 후보는 우리에게 희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에드워즈 부통령 후보는 우리에게 희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I’m not talking about blind optimism here -- the almost willful ignorance that thinks unemployment will go away if we just don’t think about it, or the health care crisis will solve itself if we just ignore it. That’s not what I’m talking about. I’m talking about something more substantial. It’s the hope of slaves sitting around a fire singing freedom songs; the hope of immigrants setting out for distant shores; the hope of a young naval lieutenant bravely patrolling the Mekong Delta; the hope of a millworker’s son who dares to defy the odds; the hope of a skinny kid with a funny name who believes that America has a place for him, too.

저는 지금 맹목적 낙관주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맹목적 난관은  실업을 생각 안하면 실업이 없어지고, 의료의 위기도 무시하면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 거의 의도적인 무시를 뜻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고, 더욱 실질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모닥불에 둘러앉아 자유를 노래하던 희망,  먼 나라들로부터 떠나 온 이민의 희망, 메콩강 삼각주를 용감하게 순찰하던 젊은 해군대위의 희망, 불평등에 굴복하지 않는 공장 노동자 아들의 희망, 미국이 살 곳이라고 믿는 이상야릇한 이름의 말라깽이 소년(오바마)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오바마] 버락 오바마 대통령 인생, 대통령 된 과정, 대담한 희망 연설 총정리

 

 

Hope -- Hope in the face of difficulty. Hope in the face of uncertainty. The audacity of hope!

그 희망은-- 어려움에 직면해서도 까딱하지 않는 희망, 불확실성에 직면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희망, 큰(담대한) 희망입니다.

 

In the end, that is God’s greatest gift to us, the bedrock of this nation. A belief in things not seen. A belief that there are better days ahead.

그것은 신이 준 가장 큰 선물이며, 이 나라의 기반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좋은 날이 올 것이란 믿음입니다.

 

I believe that we can give our middle class relief and provide working families with a road to opportunity.

저는, 우리들이 중산층에게는 안심을 주고, 노동자들에게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I believe we can provide jobs to the jobless, homes to the homeless, and reclaim young people in cities across America from violence and despair.

저는, 우리들이 실업자에게는 일자리를,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집을 줄 수 있고, 미국 전역의 도시에서 폭력과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을 갱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I believe that we have a righteous wind at our backs and that as we stand on the crossroads of history, we can make the right choices, and meet the challenges that face us.

저는, 우리들이 정의의 순풍을 받고 있고,  역사의 전환점에 있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고, 우리들이 직면한 난제들과 정면으로 맞서 헤쳐 나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America! Tonight, if you feel the same energy that I do, if you feel the same urgency that I do, if you feel the same passion that I do, if you feel the same hopefulness that I do -- if we do what we must do, then I have no doubt that all across the country, from Florida to Oregon, from Washington to Maine, the people will rise up in November, and John Kerry will be sworn in as President, and John Edwards will be sworn in as Vice President, and this country will reclaim its promise, and out of this long political darkness a brighter day will come.

미국민 여러분!,  오늘밤,  저와 같은 에너지를 함께 느끼신다면, 저와 같은 절박감을 함께 느끼신다면, 저와 같은 희망을 함께 느끼신다면,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을 한다면, 플로리다에서 오레곤까지, 워싱톤에서 메인까지, 미국의 모든 국민들이 일어나 오는 11월에 케리 대통령과 에드워드 부통령을 취임 선서시키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 나라가 그 약속을 재생시키고, 기나긴 어두운 정치의 굴레에서 벗어나 밝은 내일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Thank you very much everybody. God bless you. Thank you.

감사합니다.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 감사합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