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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인문학 (Humanities)/3. 인물, 단체 연구 (Research on people, group)

[수부타이] 인류 역사상 최고 장수 | 몽골제국 '수부타이' 총정리

by hlee100 202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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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타이 총정리

인류 역사상 최고 장수 | 몽골제국 '수부타이' 총정리

 

 

1. 수부타이란 누구인가?

  수부타이는 몽골 제국의 장군이자 칭기즈 칸이 가장 신임하는 장수인 '사준사구'(칭기즈칸의 4명의 준마과 4명의 충견 ; 징키즈칸의 최측근)의 사구 중 한 명이었다. 몽골제국의 역사서인 '원조비사'에서는 '용맹한 수부타이'라고 부른다. 수부타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적을 세운 명장이다. 그는 72년의 삶 동안, 32개의 나라를 정복하거나 멸망시켰으며, 역사에 정확히 기록된 것만 65번의 회전에서 승리했다. 회전(會戰, pitched battle)이란 두 군대가 적당한 장소에 결집해 '모 아니면 도'식으로 벌이는 전투를 말한다. 수부타이는 평생 그가 만난 금나라, 송나라, 서하, 각 유목 부족,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이슬람의 십수 개 국가, 러시아, 불가리아, 폴란드, 헝가리, 조지아, 아르메니아의 군대들을 현지에서 줄줄이 격파했다. 일평생 1개 나라하고만 싸우고도 또는 홈그라운드에서 방어전만 펼치고도 명장으로 대우받는 인물이 세계사에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수부타이의 전적이 얼마나 차원이 다른 넘사벽인지 알 수 있다.

 

인류 역사상 최고 장수  몽골제국 '수부타이' 총정리


  몽골군의 세계정복 중에서도 수부타이는 고려 전선보다는 중국과 서쪽 정벌에서 많이 활약했기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다른 장군보다 낮은 편이다. 한국 한정으로는 차라리 여몽전쟁에 참여한 살리타가 더 유명하다. 한국어로 구글에 검색했을 때 살리타가 훨씬 결과가 많고 뉴스에 언급되는 빈도 수도 훨씬 높다. 하지만 직접 침략을 당한 서양, 중동권에서는 칭기즈 칸과 거의 동급으로 악명이 높다. 역사학자들이 서술한 책 『What if』에서는 역사상 가장 무시 당한 명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2. 수부타이의 성장

  우량카이족(최근까지의 우량카이족 후손들은 반유목 반정착 생활을 하였는데, 봄부터 늦가을까지 유목과 식량을 비축해 두는 생활 양식을 보이며, 겨울철에만 정주지에 거주하며 지낸다.) 출신으로, 칭기즈 칸 초기 파티의 2인자였던 '젤메'의 아우다. 수부타이는 어린 시절부터 유목 생활, 즉 말타기를 하며 성장했다.

  어머니는 수부타이를 낳다가 사망했다. 아버지는 '자르치우다이'라는 이름의 대장장이였기에, '수부타이'는 '젤메'에 이은 막내로 가업인 대장장이를 이어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략 14세 때 형인 '젤메'를 따라 또 다른 형제 '차오르칸'과 함께 '칭기즈칸'의 군에 입대한다.

 

  원래 '젤메'는 '테무진'(칭기즈칸 본명)과 같은 달에 태어나, 아버지 '자르치우다이'가 테무진의 아버지 족장 '예수게이'에게 테무진의 노예로 바쳤다. 그러나 갓 태어난 '테무진' 키우기에도 벅찬 '예수게이'가 장성하면 보내라고 돌려보냈고, '예수게이' 독살 이후 가난하고 어렵게 살던 '테무진'이 장성하자, '예수게이'의 죽음으로 약속 이행을 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며 '젤메'를 '테무진'에게 보낸다. 그로 인해 '젤메'는 '테무진'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고, 그와 유사한 행적을 보인 동생 '수부타이'도 어릴 때부터 각별한 신임 속에 각종 군사 기술을 배우게 된다.

 

  '칭기즈칸' 군에 입대했을 때부터 '수부타이'는 칭기즈칸의 막사에서 각종 시중을 드는 역할을 맡으며, 자연스럽게 칭기즈칸 막하 장군들의 전략 및 전술회의에 배석했다. 이로 인해 어릴 때부터 전략/작전 수준의 관점으로 전술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각 및 이해력이 길러진다. 이는 향후 '제베'라는 명장의 부관으로 복무하면서 부터, '수부타이'는 더욱 정교한 전술적 능력을 흡수할 수 있었고, 앞으로 세울 역사적이며 압도적인 전공을 세울 수 있었던 토대가 된다.

 

  타이치우트 족에서 항복하여 '칭기즈 칸' 측에 새로 합류한 '제베'의 뛰어난 실력을 파악한 '칭기즈 칸'은 그로 하여금 사실상 그보다 고참인 '수부타이'를 지도하게 하여 그의 포텐을 만개시키도록 이끈다. 인재를 파악하고 그들의 사회상 지위에 상관없이 기용하는 칭기즈 칸의 통찰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3. 수부타이의 전공

  1204년에 '수부타이'는 칭키즈 칸이 나이만족의 다얀 칸과 싸운 '차키르마우트 전투'에서 철륜차로 산맥을 돌파하여 적진을 탈취하기도 하였으며, 메르키트족의 잔당을 소탕하는 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몽골이 통일되자 천호장에 임명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고 장수  몽골제국 '수부타이' 총정리

 


  칭기즈 칸의 서정군에 '제베'와 함께 참전하여 호라즘 왕국을 공격하여 당시 7대 술탄이었던 알라 웃 딘 무함마드를 카스피해의 작은 섬으로 몰아넣어 죽게 하였으며, 몽골로 귀환하는 김에 전리품을 좀 더 챙겨서 가자고 해서 이란, 캅카스의 여러 도시와 러시아 남부의 공국들을 쓸어버리면서 공략하였다. 크림 반도에서 이탈리아계 제노바 공화국의 식민군을 격파하기도 했으며, 러시아 공국들의 연합군 8만명을 격파하기도 했다(칼가강 전투). 이 때 러시아 공국들의 야전 역량이 무너져, 추후의 본격적인 동유럽 원정 때는 속수무책으로 밀리게 되었다. '수부타이'가 러시아에서 돌아오자 그의 나이를 걱정해서 '칭기즈 칸'은 그로 하여금 후방에서 쉬게 하려고 했지만, '수부타이'는 칸이 전선에 나서는데 어떻게 자신이 뒤에서 쉬고 있겠냐며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부타이'는 금나라를 정벌하던 도중에 처음으로 패배를 맛보게 되는데, 1231년 당시의 금나라 최고의 명장이었던 '완안진화상'이 이끌던 금나라 군대와 맞붙은 도화곡 전투에서 퇴각한 것이다. '완안진화상'은 그의 뒤를 쫒아 추격전을 했다. 그러나 실패도 잠시, 끝내 1233년 금나라의 도읍인 변경을 함락하여 금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인류 역사상 최고 장수  몽골제국 '수부타이' 총정리

 

 

  바투의 유럽 원정에도 부사령관으로 참전했는데 총사령관인 바투의 삽질까지 메꿔가며 큰 공을 세운 뒤에 귀환했다. 당시의 러시아 공국 지역을 거의 초토화 시켰고, 레그니차 전투 및 사요 강 전투에서 각각 3-5만 명 가량의 폴란드/튜튼, 헝가리 기사단을 전멸시켰다. 특히 사요 강 전투는 패퇴하는 헝가리 군 수만명을 수일간 포위 기동으로 추적하며 학살. 유럽지역에 남아있는 몽골에 대한 공포는 이 전역들에 기반한 것이다. 명목 상의 총사령관은 바투였으나, 실제로 해당 전역들을 주관한 것은 수부타이로 보이며, 이로 인해 킵차크 칸국의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수부타이'는 금나라 정벌 때 빼고는 패배한 적도 거의 없었고, 생애 20번의 원정 동안 65번의 회전에서 승리했고 갈아버린 나라만 32개이다. 또 싸워본 문화권만 해도 몽골계, 중국계, 중동계, 유럽계로 사실상 유라시아 대륙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문화권의 군대를 쓰러뜨렸다. 사실상 움직일 때마다 나라 하나 갈아버리는 유일무이한 사람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고 장수  몽골제국 '수부타이' 총정리

 

 

4. 수부타이의 죽음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을 정복할 계획을 세우던 도중 몽골 본토에서 우구데이 칸의 병사 소식이 알려져, 몽골 본토에서 열리는 쿠릴타이에 참가하기 위해 회군하게 되었다. 이후 구유크 칸은 그를 중국 원정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으나 귀환 중 병사한다. 원정 당시 이미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쇠약해져 말을 못 타게 되긴 했었다. 몽골의 대칸 3대를 섬긴 백전노장으로 수명도 72세로 중세 몽골인 치고는 꽤나 장수한 편이다.

  사후 그의 일족은 몽골 제국 및 원나라의 4대 명문 중의 하나로 권세를 떨치게 된다. 나머지 3명은 무카리, 보오르추, 티라운의 일족이다. 특히 그의 아들인 우랑카다이와 손자인 아쥬도 몽골 제국의 명장으로 용명을 떨쳤다.

 

 

 

정리하며...

  이순신 장군, 사자왕 등 이미 전쟁 역사에서 유명한 장군들은 어느정도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수부타이' 장수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나의 생각이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부타이'가 세웠던 공적들을 보면서,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이런 업적들을 세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적, 사회적인 상황도 분명 있었겠지만, '수부타이'라는 한 개인에 대해서 더욱 궁금해졌다. 말 그대로 멋있었기 때문이다. '수부타이'를 보면서 그의 성공의 공통점을 정리해봤다.


1. 준비(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
  '수부타이'는 대장장이 집안의 출신으로, 전쟁과는 큰 연결고리가 없었다. 하지만 전쟁에 필요한 모든 전략과 전투능력을 오직 본인의 후천적 노력으로 달성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어깨넘어로 배우려 노력하려는 집념이, 그에게 주어진 기회를 모두 성공으로 바꿔놓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칭키즈 칸'은 전투경험이 검증되지 않았던 '수부타이'에게 처음으로 독자적인 전권으로 전투를 시킬 때, 이를 많이 걱정했음을 사료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수부타이'는 이런 시험을 기회삼아,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모두 성공시켜냄으로써 '징키즈 칸'은 점점 그의 능력에 감동을 받게 된다. 이렇게 '수부타이'는 하나 하나 신뢰와 기반을 다져, 역사상 최고의 장수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2. 냉철하게 문제해결에 중점을 둔다.
  '수부타이'가 치뤄왔던 대다수의 전투는 군사의 수적열세를 가진 전투였다. 전술에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냈던 '수부타이'는 그의 군사작전에 역사상 처음으로 다양한 전술들이 등장한다. 전투속도, 기동력, 포위공격, 후방전투, 종심전투, 섬멸전 등은 현대 전투에서도 쓰이고 있다. 이렇듯 '수부타이'는 특정 관습에 묶이지 않고, 매번 마주하는 문제들을 기준으로 유연하고 실질적인 문제해결방법을 고안하고 이를 바로 적용했다.
  이렇듯 '수부타이'의 전술은 적장에 맞춰서 항상 달랐다. 예를 들어, 호라즘 전투 시 적장이 '몽골군을 공성전에 약한 유목민족이다'라고 생각하여, 공성전으로 전술을 택했을 때, '수부타이'는 이를 이용하여, 금나라와의 전 전투에서 배운 새로운 공성기술과 부대로 맞대응한다. 또한 최강의 기동력을 활용해, 적장의 예상경로와 동시에 적장이 절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산맥을 넘거나, 사막을 넘는 경로로 군대를 보내기도 한다. 또한 '칭키즈 칸'을 배신한 것처럼 위장하여, 적진에 쉽게 침투하는 등의 기만전술과 기습작전을 잘 활용하기도 한다. '수부타이'는 적장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것을 기반으로, 그에 맞는 전술을 적용한다. 그의 전투를 보면, 항상 적장의 예상을 뛰어넘은 다른 전술로 적장이 당황해하며 전투가 마무리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적장의 모든 예상이 '수부타이' 손바닥 위일 수 있는 정보전과 유연한 문제해결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업적인 것이다.

3. 함께 성장한 가족 같은 정예부대
  '수부타이' 본인이 그러했듯, 함께하는 군사들도 수많은 전투경험이 쌓이면서 그 어떤 나라의 군사보다도 강한 정예병이 되어 있었다. 혹한 추위에 어떻게 견디는지, 눈 덮힌 들판에서 말발굽으로 눈을 파 풀을 찾아내는 생존법이라던지, 사막에서는 어떻게 생존하는지, 군장을 가볍게 하여 기동성을 어떻게 높이지는지 등의 모든 전투 환경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군사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기록에서도 나오듯, 전투 초반에 적장이 '이렇게 기병, 공병, 궁병 등의 공수전환이 빠른 '수부타이' 군대를 보고,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고 한다. 결과도 당연히 '수부타이'의 승리로 기록되었다.
  이와 함께 새로운 문화권의 국가를 점령하면서, 반기를 든 국가에게는 철저한 본보기로 응징을 하는 한편, 그 외의 국가들에게서는 새로운 기술자나 용병, 인재를 그 국가에서 등용하여 보충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군대를 확장해나가니, 어떤 방식의 전투력에서도 밀리지 않는 군대가 된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인물로서 '수부타이' 장수에 대해 알아보면서, 현재 실생활에도 참조하여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그들이 가졌던 이념이나 뜻, 그를 이루기 위한 신념과 노력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수부타이'의 인생을 통해 한 문장의 메세지라도 얻은 것이 있었다면, 우리의 삶도 그 한 문장 만큼은 조금 더 윤택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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