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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국제사회학/3. 이탈리아 (Italy)

[국제사회 공부] 이탈리아 - 나폴리 도시

by hlee100 2019.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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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이탈리아에 다녀왔습니다.

참으로 고풍스러운 예전 유물들이 고스란히 남겨진 나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떄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중에 나폴리 항구 도시에 들렀습니다.

이 항구 도시에 대해서 역사와 특징을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나폴리의 역사를 먼저 살펴볼까요?
유럽 북방에서 내려온 도라아 종족 (훗날 군인도시 스파르타 국가 건설) 복속을 피해 그리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게 되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들을 당시 그리스어로 디아스 프라(?)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생활 환경이 있는 곳에 도시를 건설 겁니다. 이것을 그들의 말로 네아 폴리스, 네아는 New, 폴리스는 도시국가란 뜻으로 새로운 도시라 불렸고, 이를 이탈리아어로 나폴리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나폴리는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처음 역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니 시작 자체가 식민도시로 시작해서 그런지, 주체성과 자주성이 떨어졌는지, 시간이 지나면서 나라, 나라에게 복속되는 환경 속에서 그렇게 적응하여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하는 방향을 선택합니다. 다른 예로, 시칠리아의 마피아는 자주정치와 독립을 지향했다는 점과는 대조됩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중세시대 때에는 나름 영향력을 가진 만만치 않은 나라로 자리매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 근대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1, 2 세계대전을 겪고 나면서 상황은 많이 바뀝니다.

 

특히 세계대전 직전에 이탈리아가 북쪽의 세르데냐 왕국(빅토리아 엠아르 2 배출) 의해 통일이 되자, 남쪽의 나폴리는 통일왕국의 기득권 세력에는 배제되어 밀려나게 됩니다. 북쪽의 떼르노(?)지역이 개국공신이었지, 남쪽세력은 통일의 주역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역사상 어떤 새로운 왕조를 보아도 개국공신에게 많은 권력과 힘이 몰리는 것은 인과결과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렇게 나폴리는 한번 어려운 상황을 겪고, 바로 일어난 1,2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더욱 어려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고비 뒤에는 희망이 있다고 했던가요?

 

나폴리에게도 기회가 찾아옵니다. 동유럽 끝자락의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소련)이라는 새로운 공산주의 국가가 생겼습니다.   미국이라는 자유주의 수호 국가라는 자유주의 국가 있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국가간의 냉전시대가 것이죠. 나토라는 군사 연합체가 등장합니다. 미국은 군사 연합체를 형성하진 않았지만 경찰국가의 역할을 맡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나토 연합군의 해군 분야의 모든 지휘권을 갖게 됩니다.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가장 화력의 무기가 항공모함이라는 사실에서는 나토의 해상의 지휘권을 갖게 된다는 상황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항공모함에 비치된 화력과 전투기의 숫자가 왠만한 국가의 모든 화력을 충분히 웃돌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추후에는 1대를 뺐지만, 나폴리에 3대의 항공모함을 주둔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항공모함의 미군들이 나폴리에서 생활하면서 나폴리가 미군과 그들의 가족들도 많이 채워지게 됩니다. 이런 인구 증가와 경제의 활성화로 나폴리가 단기간에 급속도로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릴 버릇을 준다고 했던가요? 급속도로 힘과 경제를 얻은 나폴리는 더욱 크게 발전하여 성장하기 보다는 흥청망청의 정치를 펼칩니다.

 

당시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20개의 주로 가면서 지방자치제로 돌아서던 시기였습니다. 20 중의 나폴리가 소속된 주는 깜빠니아 주였습니다. 주에는 미군들이 많아서 경제적으로 호황기를 누렸던 것이죠.

 

호황기에 흥청망청 경제를 낭비하기 시작합니다. 돈은 많이 벌고, 복지적 생활도 국민들의 세금을 정부의 발전을 위해 쓰지 않고 사적으로 마구 쓰기 시작하면서 타락을 시작합니다. 낭비의 예를 들자면, 축구의 마라도나의 최고의 전성기가 바로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나폴리에서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나폴리가 어머어마한 돈을 주면서 마라도나를 유치했던 것이죠. , 국민 우민화 정책을 것입니다. 낭비까지는 괜찮지만, 시간이 지나 결국 범죄집단과 정치권력이 결탁하게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리하여 아탈리아의 역사상 나폴리가 지방자치제의 최악의 사례로 기억되었죠. 점입가경이라고, 1990년대 유럽연합(현재 26 국가 등록) 결성되고, 상징적이긴 하지만, 유럽 연합의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이탈리아의 수상 출신이었던, 알도 프론토(?) 대통령이 되었고, 정책적으로 조금 발전이 더딘 변두리 지역의 유럽 도시를 선정하여, 연합의 남은 기금을 모아 이월하여 발전시켜보자는 정책을 추진합니다.

 

지명된 도시가 나폴리였죠.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와 나폴리에 투자를 하는 조건으로, 사회에 이로운 역할을 해야한다는 조건으로 유럽의 쓰레기의 일부를 소각하여 화력으로 전기를 생산할 있는 쓰레기재처리 화력발전소 건립을 내걸었고, 나폴리는 돈도 받고 자체적으로 전기생산도 가능한 제안을 거절할리 만무했습니다.

 

그렇게 계약을 나폴리가 돈만 받고, 돈을 탕진하여 결국 화력발전소를 건립하지 못했습니다. 사기를 친거죠. 그래서 이탈리아의 쓰레기를 소각하지 못해 지역에서 쓰레기가 쌓이는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했고, 국제적으로도 크게 이슈화되었습니다. 모든 이탈리아의 다른 주와 국민들이 혀를 내둘렀던 겁니다. 이후로 19 주에 나폴리의 쓰레기를 받아주지도 않고, 모든 계약 자체를 하지도 않는 왕따를 당하게 됩니다. 나폴리 옆에 휴화산으로 있는 베수비오 화산이 다시 활동을 하면 가장 피해를 입는 지역이 나폴리라고 지질학자들이 연구결과를 냈는데, 이탈리아 국민이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라 라고 저주를 내릴 정도로 나폴리를 혐오하게 것입니다.  지금도 나폴리는 나폴리의 쓰레기를 독일로 가져가 돈을 내고 소각시킵니다.

 

 

나탈리를 직접 가보면 느낄 있었던 것은 곳이 이탈리아인가 이집트인가 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낙후된 도시였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오염이 되었고, 이미 모든 신뢰를 잃은 도시이기 때문인지, 전세계의 3 미항 하나가 나폴리인데, 미항의 미자가 미안할 미자다 정도로 도시풍경이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탈리아 관광 패키지에 나폴리가 포함된 경우가 드물고, 간혹 간다해도 당일 들려 돌아보는 정도의 일정이지, 숙박하면서 쇼핑하는 등의 돈을 쓰는 일정이 아예 없다는 것이 슬픈 사실입니다. 실제로 치안도 나빠서 관광객들이 소지품들을 많이 잃어버리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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