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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인문학 (Humanities)/3. 인물, 단체 연구 (Research on people, group)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KGB, 어린시절, 재산 및 정치활동 총정리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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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Влади́мир Влади́мирович Пу́тин

Vladimir Vladimirovich Putin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KGB, 어린시절, 재산 및 정치활동 총정리

 

러시아 연방의 제2·4대 대통령.

 

1999년 12월 31일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한 이래 현재까지 장기집권 중인 러시아의 대통령이다. 명목상으로는 민주적 절차에 따른 자유선거를 통해 당선된 국가원수지만, 다수의 부정선거 논란과 수많은 정적들을 탄압, 암살한 의혹으로 인해 사실상 독재자로 간주된다. 2020년에는 대통령 연임 제한 철폐 개헌으로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통합 러시아당의 실질적 당수이기도 하다. 물론 통합 러시아의 법적 당수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이지만, 사실 메드베데프가 당수인 이유는 당정분리를 준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에 불과하며 이쪽도 실권은 푸틴이 장악하고 있다.

 

정식으로 연방 대통령을 맡은 뒤 3연임이 금지된 헌법을 무력화시키는 방안으로 당시 부총리였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에 앉혀놓고 자신은 총리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실권을 장악했고, 메드베데프의 임기가 끝난 다음 치러진 대선에서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메드베데프는 총리로 다시 옮겨갔다. 2016년 총선에서 사실상 그의 정당인 통합 러시아가 의석을 과반수 차지 함으로써 그의 영향력이 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치러진 재선에도 성공해 2024년까지 임기예정이다.

 

외교적으로는 체첸 공화국 독립운동 탄압, 크림 반도 강제 병합,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국제 사회에서 비난을 초래하기도 했다. 올림픽에서 러시아 선수들에게 집단 약물을 주입했다가 이 사실이 나중에 발각된 것 또한 국제 여론이 악화되는데 일조했다.

 

또한 푸틴은 2013년~2016년까지 4년 연속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20년 4월 22일 개헌 국민투표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연기되었지만, 얼마 후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개헌안이 통과되어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해졌다. 푸틴의 나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종신집권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KGB, 어린시절, 재산 및 정치활동 총정리

 

푸틴의 숨겨진 재산

공식적으로 푸틴 대통령은 매년 약 14만 달러(약 1억6천800만원)를 벌고 작은 아파트만 소유한 것으로 나오지만 그의 숨겨진 재산은 1천억 달러(약 120조원)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지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수년간의 추측과 소문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의 재산은 매우 불투명하다.

 

다만 10억 달러(약 1조2천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는 '푸틴의 궁전'이라 불리는 흑해 연안의 거대한 저택의 소유권은 다양한 방식으로 푸틴 대통령과 연결된 역사가 있다고 NYT는 전했다.

또 1억 달러(약 1천200억원)에 이르는 호화 요트 '그레이스풀'도 '푸틴의 요트'로 불린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탈세와 부패 실태 등을 폭로한 문건인 이른바 '판도라 페이퍼스'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연인으로 보도된 한 여성은 모나코에 410만 달러(약 49억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하는 등 그동안 축적한 자산이 1억 달러(약 1천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미국을 비롯해 서방 동맹국들이 푸틴 대통령과 직접적으로 연결지을 수 있는 재산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미국 의회에 러시아 제재 관련 자문을 해 온 폴 마사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선임 고문은 어떤 자산이 이번 제재의 영향을 받을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NYT에 말했다.

다만 그는 미국이 푸틴 대통령의 부를 제한적으로 파악해,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제재를 한다면 제재를 받는 이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유럽 외교관도 이번 제재를 '정치적으로 중요한 신호'라며 상징적 가치를 강조했다.

미국의 '특별지정 제재대상'(SDN)에 푸틴의 이름을 올림으로써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등 작지만 악명 높은 국가의 원수들과 푸틴을 나란히 놓게 됐다는 것이다.

반면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네이트 시블리 연구원은 "세간에서 푸틴 대통령의 재산으로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다고 말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그는 모든 것을 통제하는 독재자이기 때문에 막대한 재산을 소유할 필요가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KGB, 어린시절, 재산 및 정치활동 총정리

푸틴의 성장기

1952년 10월 7일 소련 레닌그라드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쥐들이 지나다니는 소련 노동자들의 낡고 허름한 공동 주택에서 자랐다.

 

할아버지 스피리돈 이바노비치 푸틴 (1879~1965)은 무려 블라디미르 레닌과 이오시프 스탈린의 다챠에서 일하는 전속 요리사였으며 아버지 블라디미르 스피리도노비치 푸틴 (1911~1999)은 소련 해군에 징집돼 잠수함 부대에서 복무하다 NKVD와 소련 육군으로 전임된 후  독소전쟁에 참전해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중상을 입은 상이군인이었다. 어머니 마리야 이바노브나 푸티나 (1911~1998) 역시 친정 식구들 다수가 전쟁통에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참극을 겪었다. 푸틴 부부가 가진 첫째 아이 알베르트는 어릴 적에 일찍 죽었고, 둘째 아이 빅토르는 레닌그라드 봉쇄 중 디프테리아로 사망했다. 그렇게 폐인이 된 30대 부부만이 살아남아 전쟁 후에 마흔이 넘어 세번째로 낳은 아이가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청소년기의 푸틴은 본인도 인정했듯이 초등학생 시절부터 또래 불량학생들과 어울리며 크고 작은 비행을 저지르던 비행청소년이었다. 그탓에 소련 공산당 어린이 조직인 피오네르 동맹에 한참 늦게 가입했고 학교생활도 순탄치 않았다고 한다. 전후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며 겨우겨우 지역 공산당 중간간부로 승진한 그의 부친과 독실한 정교회 신도이자 파트타임 일거리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던 모친은 당시 어린 푸틴의 행실을 교정하려 노력했으나 처음에는 큰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부모의 꾸준하고도 엄격한 가정교육과 푸틴과 가깝던 운동코치들의 지도 덕분에 푸틴은 고학년 시절부터 모범적인 학생으로 거듭났고 부진했던 성적이나 당활동에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였다.

 

1960~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푸틴은 철이 든 이후 학업에 집중하면서도 어린시절 취미를 붙인 호신술(유도 등) 연마를 계속 이어갔다. 스파이 활동에 대한 강한 열망 때문에 체육을 업으로 삼지는 않았으나 대학시절에 유도 사범자격을 얻은 뒤 지방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등 성인이 돼서는 그럭저럭 프로급의 호신술 실력을 갖추게 된다. 또한 비행청소년 시절의 다소 자유분방한 기질을 잃지 않고 흐루쇼프 해빙기(1956~64)에 시작되어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집권 초기까지 짧게나마 이어진 소련의 낙관적인 사회분위기와 비교적 자유로운 소비/문화생활을 즐겼으며 친구들과 몰래 서구권 문화매체를 향유하기도 했다.

 

선전물에 등장하는 영웅적인 첩보원들의 모습에 사로잡혀 일찍부터 국가보안위원회를 동경한 푸틴은 청소년 시절에 만난 국가보안위원회 레닌그라드 지부 공보관의 조언대로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법학부에 입학해 재학 도중인 1974년 국가보안위원회(일명 KGB)의 수습요원으로 발탁되었다.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KGB, 어린시절, 재산 및 정치활동 총정리

 

KGB 경력

197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하여 1975년에 《국제법에서 가장 선호하는 국가의 교역 원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법학 학사를 취득하였다. 국가보안위원회(KGB)에 가입한 이후에는 401번째로 국가보안위원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푸틴 대통령은 대학교 재학 시절에 회사법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던 아나톨리 솝차크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1991년 8월 20일, 8월 쿠데타가 일어났고, 푸틴 대통령은 군사쿠데타에 반대했다. 차후 푸틴 대통령은 나중에 자신의 결정을 설명하였는데, 선택이 어려웠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그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군사쿠데타를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있던 반대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치 활동

 

한국은 상대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러시아와 지정학적 거리가 먼 탓인지 유독 한국 인터넷상에선 푸틴의 희화화된 짤방들이나 방사능 홍차같은 밈이 유행하면서 푸짜르의 위엄이라는 둥 농담거리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푸틴의 행보를 보면 그냥 독재자 그 자체다. 방사능 홍차 밈도 자신의 체재에 반대하는 사람을 숙청하는 러시아의 무자비함을 비꼬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풍자이며, 이후엔 자신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독살당할 뻔한 일까지 생기면서 더욱 더 무자비한 독재자 느낌이 강해졌다.

 

이전의 소련 역시 이오시프 스탈린 사후에는 서기장들의 임기제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졌다. 또한 러시아의 민주주의는 보리스 옐친의 급속한 변혁 속에 1992년에 시작하자마자 고꾸라져 버렸지만, 그나마 명목상으로나마 존재했던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완벽하게 박살내버린 사람은 결국 푸틴이다. 푸틴은 러시아 헌법을 가지고 놀면서 현 정부에게 문제를 제기하거나, 비판하거나, 기타 헐뜯는 일은 꿈도 못 꾸게 하며, 실제로 언론인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되는 사건마저 벌어지는 까닭에, 푸틴은 민주주의를 압살했다고 비판받는다. 일단 독재자들 중에서는 그나마 자국을 사랑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많은 비인권적인 행위에 비해 좋은 이미지도 그 영향이 크지만, 결국에는 빼도박도 못하는 독재자일 뿐이다.

 

특히 언론 탄압이 극심한데, 예를 들어 체첸 전쟁에서 러시아군 전쟁 범죄를 고발하던 인권변호사가 대낮의 모스크바 시내에서 총격으로 살해당하고 반정부적 논조의 언론사 기자가 자택에서 암살당했다. 또한 폴로늄 홍차의 희생자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는 마찬가지로 자택에서 암살당한 친구 노바야 가제타의 기자인 안나 폴릿콥스카야 살해 사건의 배후를 추적하기 위해 이탈리아 기자와 접선했다가 피살됐다고 한다. 2014년 4월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칼럼을 모은 책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의 부제가 압권. '러시아 민주주의의 실패와 냉소, 무기력에 관한 보고.' 그녀에 따르면 러시아 민주주의는 옐친 시대인 1996년에 이미 위기에 돌입했고, 2003년 12월 총선에서 통합 러시아가 승리하면서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암살 주도 의혹이 아니더라도 푸틴이 저지른 반민주적 행동은 한 둘이 아니다. 모스크바의 텔레비전 전파수신탑인 오스탄키노 탑에서 화재가 일어날 때 화재가 일어나는 동안 모스크바에 있는 웬만한 TV는 다 먹통이 된 적이 있었다. 여기까지라면 그냥 원인 모를 화재에 가깝지만...문제는 그때 여론이 체첸 전쟁과 푸틴 통치에 대하여 꽤나 안 좋았는데, 그 화재 즈음해서 반정부적인 언론사의 주요 문건을 압수한 일이 있었다. 게다가 방송국 전파가 하나둘 복구되는 가운데에도 반정부적인 방송국의 전파는 가장 늦게 복구되기도 했다.

 

그래도 일단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정적들을 사형시키지는 않으며 정치범수용소를 따로 건설하지는 않는다. 이는 러시아가 아예 제도적으로 비판을 막아버린 북한이나 이란, 싱가포르, 혹은 공식적으로 일당독재를 표방하는 중국이나 베트남과는 달리 대내외적으로 자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표방하기 때문인데 푸틴에 반대하는 언론이나 시민단체들을 어느 정도 봐주는 이유는 자신이 자신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허용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외부에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푸틴이 여태 권력자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는 것도 체육관 선거 같은 것이 아니라 외면적으로나마 국민에게 선출된 덕분이니...그 탓에 '푸틴은 과연 독재자가 맞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의견 또한 존재한다. 푸틴은 '독재자'인가? 물론 끊임없이 제기되는 러시아 대선의 부정선거 증거와 언론 탄압을 보면 그냥 독재자의 가면에 불과하다.

 

보리스 옐친 시절의 다 망해가던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발전시킨 게 푸틴의 정치 능력이었다고 보면서 단순히 푸틴을 서구의 눈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우선 서구에서 가장 좋아했고, 민주주의의 화신이라고 칭송했던 보리스 옐친 시기의 러시아에는 실제로는 사회 붕괴를 틈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었고 각종 이득을 독점해온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가 그나마 이룬 경제적 변화의 이점을 악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친족들의 독점과 부패, 재벌과 마피아에 대한 견제 따위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1998년 당시 디폴트를 선언하며 대놓고 돈 없다며 배째라 전술로 비판받기도 했는데 그에 비해 나라를 안정화시키고 정경유착의 정도를 완화한 푸틴이 러시아의 현실에는 더 낫다는 것이다.

 

푸틴은 자신에 반대하는 올리가르히와 레드 마피아를 쓸어내며 그 덕에 러시아는 구조개혁과 오일머니로 중산층이 성장할 수 있는 활로를 더욱 키웠다는 게 푸틴의 강권통치를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강권 통치를 경제적으로 옹호하는 이들은 그 뿌리에 "민주주의를 실행할 내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서구 민주주의를 운용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 비판적인 이들은 매우 약소한 민주주의 경험을 가졌던 폴란드나 그보다 더한 동유럽 국가들의 빠른 자유화 사례를 들며 그 내적 기반을 박살낸 게 바로 옐친-푸틴 정권이라고 반박한다.

 

일부는 인도와 중국의 차이를 두며 설명하기도 한다. 단적인 예로 인도는 불안정한 민주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경제 성장이 큰 일당독재국가인 걸 보면 알 수 있다. 푸틴을 제외하면 그 다음으로 표를 얻고 있는 자들은 심하게 분열된 좌파그룹과 매우 위험한 극우주의자들이다. 사실 러시아는 현 상태로는 푸틴 이외의 대안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물론 옐친과 푸틴 모두 대안이 될 만한 세력들을 떡잎부터 다 찍어냈긴 했지만, 지금 당장 표를 행사해야 하는 유권자들 입장에선 민주주의 선거에서는 역시 최고가 아닌 차악을 뽑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그러나 푸틴을 경제적 업적으로 옹호하는 논리에는 허점이 많다. 그가 보여준 성과가 일시적 유가상승에 의한 복권 당첨이라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제조업, 문화산업 같은 장기적 발전에 유리한 형태로 산업 구조를 전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를 제압한 이후 새로 들어온 무리 역시 푸틴의 친구들이었다. 러시아 경제의 가장 큰 버팀목인 석유/천연가스 관련 기업들은 모두 푸틴과 연계된 이들이 장악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업체 가즈프롬으로 경영진이 전원 푸틴의 친구들과 KGB후배, 집권 통합 러시아 출신 인사들, 그리고 피제르츠라고 불리는 동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이외에도 통신, 전력, 수송, 철도 등 주요 산업체는 모두 친푸틴 인사들이 장악하였으며, 불투명한 회계 처리로 막대한 돈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푸틴과 그 측근 그룹이 러시아 GDP의 대략 15%~30%를 직접 통제하고 있다고 추측된다.

 

이로 인해 석유, 천연가스 등의 자원 수출에 편중되어 있는 러시아 경제는 체질 개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에너지 가격 변동에 울고 웃는 러시아 경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선 산업구조의 변화(경공업, 중공업, 첨단산업, 서비스업, 문화산업 등의 육성 등 다양화가 필요하다.)가 필요한데, 푸틴과 그 측근들이 에너지 산업을 휘어잡고 있으니 에너지 산업의 비중을 줄이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리가 없다. 또한 경제개혁에는 필연적으로 단기적인 진통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다. 푸틴이 지지를 받는 가장 큰 이유가 에너지 자원 수출을 통해 다 죽어가던 러시아의 경제를 그나마 살만하게 만들었다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푸틴이 비록 일시적인 것일 지라도 개혁에서 수반되는 진통을 감당하려 할 지는 미지수.

 

하지만, 이는 푸틴의 공과가 뚜렷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일시적인 유가 상승이 있어도 자원의 저주에 걸리는 나라들이 수두룩하다. 반면에 엘친에 의해 완전히 망해버린 러시아를 지금의 러시아로 만든 업적은 인정해야 한다는게 지지자들의 변론이다. 어찌 보면 콜럼버스의 달걀이지만 러시아 국민 중 16%인 2천만명이 빈곤층인 것을 보면 국가 경제가 발전하더라도 국민 생활 수준이 쉽게 좋아지기는 어려우며 제대로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가 실시되자 러시아 경제는 더욱 악화되어 2015년 1분기 물가 상승률은 16%를 기록했고 연간 실질임금은 5월 14%, 6월 7% 떨어졌다. 사실 빈곤율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통치했던 15년 동안 꾸준히 하락해 2014년에는 11%를 기록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다시 16%로 올라간 것이다. 1996년에 러시아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빈곤층이었으나 당시 러시아는 유가상승의 행운을 누리지 못했으며 푸틴 역시 옐친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예를 들어서 2010년 3월 29일 파르크 쿨투리 지하철역에서의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있었다. 적어도 30명이 죽은 큰 사건이었는데, 푸틴은 자신의 분노를 이렇게 남겼다. "테러리스트들은 박살날 것이다."

 

2011년 1월 26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서의 자살폭탄 테러로 35명이 죽고 160여 명이 다치자, 푸틴은 "그게 누구였건 간에, 어떤 사정이 있었건 간에 그들은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강권통치 이외에도 독재를 위한 발판을 임기 내내 만들어갔다. 러시아 총선은 원래 선거구제와 정당명부제의 '50 대 50' 혼합제였는데, 푸틴은 이를 100% 정당명부제로 고쳤다. 이에 따라 7% 이상 득표할 때만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정받고, 그 이하를 득표한 정당은 의회 진출이 불가능해졌다. 또한 대통령 후보를 등록할 때 하원의 추대 or 200만 명의 서명이 필요하게 만들도록 법을 고쳐버렸다. 푸틴측에서는 군소후보의 난립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직접선거식 지방자치제도 사실상 대통령 임명제(지방자치 간선제)로 바꿔버렸다. 푸틴 이전만 해도 지방자치단체장은 직선제로 선출되었는데, 푸틴 집권 후 의회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적합한 후보 3명을 대통령에게 제출하면 대통령이 결정해서 단체장을 앉히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바지사장 메드베데프 집권시에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늘린 것도 유명한 일.

 

이젠 비판마저 싫어하고 탄압하며 아예 듣지 않기 위해 중국처럼 검열제를 실시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중국과 손잡고 인터넷 검열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거기다 인터넷이 CIA의 프로젝트라는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하고 있다.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KGB, 어린시절, 재산 및 정치활동 총정리

 

종신 대통령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도, 러시아에게도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제도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 죽을 때까지 종신집권하는 모습이 대내외적으로 보기 좋지 않을 뿐더러 종신 집권 시도했다가 예기치 못한 실정이나 시민 혁명등으로 축출이라도 된다면 역사에 본인을 위대한 정치가로 이름 남기고 싶어하는 푸틴으로서는 영웅은커녕 로버트 무가베처럼 본인이 잘한 것들마저 부정당하는 최악의 결말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진심일 가능성이 크다.이 경우 2019년 퇴임한 카자흐스탄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와 유사할 것이다. 그러나 2018년 대선에 나갈 거냐는 질문에는 "러시아 사정과 자신의 기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대답하며 출마를 기정사실화했고 결국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 출마를 확정했다.

 

2015년 2월 27일에 푸틴을 비판하던 야당 정치인 보리스 넴초프(Борис Немцов)가 밤에 총탄 네 발을 맞고 사망하고 말았다. 푸틴은 공식적으론 넴초프의 살해를 비난했지만 경찰이 사건 현장을 깨끗하게 물청소하는 걸로 볼 때 아마 제대로 된 수사 결과를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이걸 카디로프가 넴초프를 제멋대로 죽이고 푸틴은 이걸 눈 감아주는 상황이라고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카디로프는 명백히 푸틴의 후원으로 정권을 획득했고 유지하고 있다. 그런 카디로프가 딱히 이해관계도 없고, 푸틴 권력의 심장부인 모스크바에서 중앙 정계의 정치인을 제멋대로 죽이고 다닌다는 건 전혀 설득력이 없다.



2017년 3월 23일, 우크라이나로 망명 후 반 크렘린 발언을 하던 데니스 보로넨코프 전 러시아 연방 공산당 의원이 키예프 시내에서 총격을 당해 의문사했다. 보로넨코프 의원을 살해한 범인은 우크라이나 국가근위대 출신이라고 하는데 우크라이나 내무부에 따르면 러시아 FSB에 포섭된 인물이라고 한다.

 

인구수 4위 대도시인 예카테린부르크의 시장에 러시아에서는 정말 드물게 야당 후보 예브게니 로이즈만이 당선되고 2017년에 재선까지 성공하자 눈엣가시라고 판단하고 2018년 통합 러시아가 예카테린부르크 시장직만 지방자치제를 폐지하고 관선제로 돌려버렸다.

 

정적, 반체제 인사 등을 지지할 경우 자신도 모르게 빚더미를 쌓아 버린다고 한다. 중국처럼 독자적인 인터넷 체제를 만들며, 러시아판 위키피디아를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2020년 3월 10일, 자신의 2024년 재집권 도전을 허용하는 개헌안 지지 의사를 밝혀 우려를 사고 있다. 물론 푸틴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애초에 러시아 헌법재판소가 푸틴의 심기를 거스르는 판결을 내릴 리가 만무하다. 이 개헌안이 그대로 통과되어 푸틴이 재집권한다고 가정할 경우 푸틴은 무려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개헌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통과되어 현실이 되었다.

 

2021년 1월 19일 푸틴의 정적인 나발니에 의하면 유럽의 작은 나라인 모나코의 약 39배에 달하는 비밀궁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21세기의 히틀러가 되었고 여러 독재자들처럼 처참한 결말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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